<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5. 담마짜리야 -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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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10-18 10:21 조회95회 댓글0건본문
법보신문 2025-10-17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5. 담마짜리야 - 껍데기는 가라!
생각˙말˙행동의 불일치가 혐오˙폭력 키운다
위선자˙사이비 향한 붓다˙신동엽의 일갈, 시대 흘러도 생생
윤리적 수행˙실천 없는 공직자들, 보통 사람에 허무감 안겨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 남기는 지혜가 시대 전환의 동력

겉의 웃음과 내면의 고통을 대비시킨 이미지.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와 붓다의 '담마짜리야'에 담긴
위선에 대한 경고와 진정성 회복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AI 생성 이미지]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중략)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시인이 1960년대 초에 발표한 시다. 4·19혁명과 동학혁명의 열정과 의미를 왜곡, 변질시키는 위선자들을 향한 격렬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시대에 널리 회자되면서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던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시를 ‘숫타니빠따’의 ‘담마짜리야(가르침의 실천)-숫따’에서 다시 만났다.
‘오랜 세월 채워진/ 똥구덩이처럼/ 이와같이 죄 많은 자/ 정화하기 어렵다.
모두가 하나 되어/ 그를 멀리하라!/ 껍데기는 날려버리고/ 쓰레기는 치워버려라!’(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붓다의 어조가 시인의 어조보다 더 과격하고 신랄하다. 이 목소리는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일까? 일단은 ‘집을 버리고 떠난/ 출가자’들이다. 출가는 ‘다르마와 수행’이 최상의 자산이다. 헌데,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천성이 말이 많고/ 상처 주기 좋아하는’, ‘다투기 좋아하고/ 어리석음에 뒤덮인’이들이 그들이다. 한마디로 붓다의 가르침(담마)을 실천(짜리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수행자도 아니면서 수행자 행세하는’, 그야말로 ‘쭉정이들’이다.
그럴 거면 대체 왜 출가를 한 거지? 물론 그들도 초심은 굳건했으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초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틈새로 사악한 의도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즉, 수행을 방기할 뿐 아니라 ‘수행을 잘하고 있는’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길을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붓다가 보기에 이들은 ‘껍데기’, ‘쓰레기’를 넘어 ‘오랜 세월 채워진/ 똥꾸덩이’같은 존재들이다. 수행자의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 수행의 장애가 되는 방해꾼, 요즘 말로 하면 ‘사이비(似而非)’다. ‘비슷하지만(似) 가짜(非)’라는 뜻이다.
이것이 비단 종교적 출가자에만 한정되는 사안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지식인, 공직자,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전반에도 두루 적용되어야 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 고위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사사로운 인정을 벗어나 공적 가치에 이바지하겠다는 서원을 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 나름의 ‘출가’를 한 셈이다. 당연히 그에 걸맞은 윤리적 수행과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공직자들을 보면 실로 참담한 수준이다. 아니, 저럴 거면 대체 왜 공직자가 된 거지? 화려한 학벌과 재산, 온갖 스펙을 내세우면서도 공적 윤리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양심도, 줏대도, 자존심도 다 내팽개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야말로 보통사람들 특히 청년세대로 하여금 삶에 대한 허무를 야기하는 ‘껍데기’, 즉 ‘사이비’들이다.
20세기 초에 간디평전을 써서 유럽을 뒤흔든 로망롤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명의 무수한 과오의 뿌리는 언어와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에 있다. 그것이 교회, 국가, 정당, 개인의 결점이다. 그것은 인간과 제도에 분열을 초래한다.”(‘간디의 삶과 메시지’)
과연 그렇다. 바야흐로 ‘생각과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극에 달한 시대다. 이런 어긋남의 풍토에서 적대적 이분법이라는 독초가 자란다.
“어떤 이들은 토론을 적대적으로 한다./ 그들에게 여기저기 집착이 들러붙는다”(‘담미까-숫따’)
붓다에 따르면, 적대와 집착은 마음의 소외로, ‘지혜의 천박함’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알맹이는 쪼그라들고 껍데기만 남는다. 그리고 그 ‘껍데기들’의 의지처가 혐오와 폭력이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구절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금화교역, 즉 여름의 화(火)기운이 가을의 금(金)기운으로 교체되는 ‘우주적 대혁명’의 시간이다. 열매가 영글기 위해선 온갖 무성했던 것들이 가차없이 스러져야 한다. 누구도 이 자연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가열한 대전환을 신동엽 시인과 붓다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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