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6. 바라문의 타락, 크샤트리아의 출가 - 환락에서 환멸로! > 스크랩

스크랩

홈 > 자유게시판 > 스크랩

<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6. 바라문의 타락, 크샤트리아의 출가 - 환락에서 환멸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11-01 10:41 조회104회 댓글0건

본문

법보신문  2025-10-31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6. 바라문의 타락, 크샤트리아의 출가 - 환락에서 환멸로!

 

고귀했던 바라문들이 화려한 재물에 눈 뜬 순간

48년간 무소유 지키며 범천 보물 간직했던 성자들의 타락
소 희생제로 시작된 아흔여덟 가지 병과 계급 분열의 비극
집˙차˙땅에 미친 현대인, 환락과 환멸 사이에서 선택할 때



1.jpg

황금의 잔을 든 왕, 고개 숙인 바라문, 그리고 숲길로 향하는 한 사문. 환락을 떠나 환멸로,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AI 생성 이미지]

 



늙고 부유한 바라문들이 붓다를 찾아와서 물었다. 요즘 바라문들은 ‘옛 바라문들의 법도’에 부합하는지를. 그걸 왜 붓다에게 묻지? 바라문 계통의 장로들도 많았을 텐데.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붓다라면 “의미 있고, 명쾌하고, 완벽한 진리를 가르치며, 범행을 알려”(‘맛지마니까야’) 주리라는 것을. 

붓다의 답은 역시 단호했다.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옛 바라문의 법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을 다스리는 고행자”였다. ‘5욕락’을 버렸기에 그들에게는 “가축도 없었고/ 황금도 없었고, 곡물도 없었다오./ 가진 것 없이 독송하면서/ 범천의 보물을 지켰다오.”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다. 그뿐인가. “그들은 48년 동안/ 동정을 지켰으며” “지행합일을 추구했다오.” 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 주었고” “지방과 왕국의 부호들이/ 그 바라문들을 공경”하였다. 특히 그들의 제사에선 소를 희생시키지 않았다. 소는 ‘약을 생산하는 가장 훌륭한 벗’이었다. 소들은 인간에게 “음식을 주고 활력을 주고/ 미모를 주고 즐거움 주니/ 그들은 이것을 알고/ 소를 죽이지 않았다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스스로 법도에 따라 실행했으며/ 그들이 세간에 존재하는 동안/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었다오.”(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이토록 고귀했던 이들이 타락하기 시작한다. 대체 왜? ‘화려하게 치장한/ 왕들의 여인들’과 ‘화려하게 수놓은 멋지게 꾸민 마차들’, 그리고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집들’을 보고서. 한마디로 눈이 뒤집힌 것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부를 갈망했다. 하여, 왕을 찾아가 거대한 규모의 제사를 지내라고 권유한다. 왕은 ‘말 희생제, 사람 희생제/ 창 꽂는 제사, 술 올리는 제사’ 등을 올리면서 바라문들에게 엄청난 재물을 안겨 주었다. 마침내 바라문들도 ‘미녀와 마차와 집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만족했을까? 그럴 리가! 그들의 갈애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왕을 찾아가 수천 마리의 소를 희생물로 바치라고 권유한다. 소들의 비명소리에 천신들과 야차들까지 “몹쓸 짓!”이라며 부르짖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이전에는 욕망과 굶주림과 늙음/ 이들 세 가지 병만 있었는데/ 가축들을 도살한 후에/ 아흔여덟 가지 병이 나타났다오.”

“이와 같이 법도가 무너지자/ 수드라와 바이세시카가 나누어지고/ 크샤트리아는 제각기 갈라지고/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게 되었다오.”

아흔여덟 가지의 질병, 계급과 파벌의 분화, 성차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바라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전쟁과 통치를 담당했던 크샤트리아, 즉 왕들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왕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제국을 끊임없이 확대해갔다. 승리한 그들이 누린 것은? 식욕과 성욕, 그리고 화려한 스펙타클. 그래서 만족했을까? 그럴 리가! 쾌락의 무한질주가 시작되었다.

붓다 역시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붓다가 출가했을 때 이미 숲에는 수많은 사문이 넘쳐났다. 바라문에서 사문으로! 영성의 ‘축’이 바뀐 것이다. 헌데, 붓다를 포함하여 당시 새로운 사상을 모색했던 사문들 가운데 많은 경우가 크샤트리아였다. 바야흐로 정복군주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들은 왜 출가를 한 거지? 다름 아닌 쾌락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붓다가 대표적인 경우다. 싯다르타 시절 그는 소왕국의 태자였음에도 지극한 환락을 누렸다. 하지만 그 절정에서 마주치건 다름 아닌 환멸이었다. 한마디로 질려 버린 것이다. 싯다르타만 그랬겠는가.

‘무소의 뿔의 경’에 달린 인연담에는 당대 최고의 도시 베나레스의 왕들의 출가스토리가 넘쳐난다(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어떤 왕은 왕비와 하녀가 보석 팔찌를 두고 다투는 모습에 질려서 출가를 했다. 또 어떤 왕은 감각적 대상에 탐닉하다 종기가 생겼는데 식사를 조절하고 치료를 받자 다시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자 다시 감각적 대상에 탐닉하다 또 병에 걸렸다. 그렇게 세 번이나 수술을 하게 되자 의사들 볼 면목이 없어서 출가한다. 전담 요리사와 음식을 두고 온갖 신경전을 벌이다 그런 자신한테 질려서 출가를 한 왕도 있다.

물론 환멸이 다 출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쾌락의 절정에서 깊은 허무와 맞닥뜨리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쎈! 쾌락을 탐하다 중독자로 생을 마감한다. 수많은 폭군이 갔던 행로다.

이 인연담들이 흘러간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그렇지 않으리라. 우리 시대 역시 ‘집 땅 차’에 눈이 돌아가고, 거의 매일 식욕과 성욕의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문명의 방향도 그 이상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바라문들이 그랬듯이 환락에 도취되어 미궁에 빠져 허우적댈 것인가? 아니면 환멸 앞에서 얼굴을 돌려 탈주를 감행할 것인가? 싯다르타가 그랬고 수많은 청년이 그랬듯이.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제목을-입력해주세요__복사본-002 (4).png

 

원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양력 2026.7.29 수요일
(음력 2026.6.16)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