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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7. 왕의 길, 붓다의 길–업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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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11-15 10:21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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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5-11-14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7. 왕의 길, 붓다의 길–업과 수행

 

팔자 바꾸려면 생각과 말과 행동 경로를 바꿔라

태자, 아버지 눈물과 제왕의 코끼리 부대 마다하고 숲속으로
전륜성왕 될 수 있는 잠재력이 고따마에겐 가장 강력한 업장
붓다가 보여준 길은 업의 강력한 흐름에 대한 저항이자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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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의 권력과 붓다의 깨달음 사이에서 수행자의 길을 택한 고따마. [AI 생성 이미지]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윤회하는 존재다. 윤회란 수많은 생을 통해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 프로세스의 원천이 바로 ‘업’이다. 업이 쌓이면 업장이 되고, 업장은 하도 두터워서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 해서 결국 팔자는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윤회론에 대한 통념이다. 정말 그런가? 불교에서 업은 ‘원죄’도 아니고 ‘주홍글씨’도 아니다. 신·구·의. 삼업, 곧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행위’다. 결국 매 순간의 행위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인데, 이보다 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운명론이 있을까? 무엇보다 붓다의 여정이 그 결정적 증거다.


네팔 근처의 소왕국 카필라밧투. 오랫동안 고대하던 태자가 태어났다. 아기의 32상호를 본 아시따 선인은 태자의 운명을 이렇게 예언했다. 전륜성왕 아니면 붓다. 이 예언은 적중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천하를 제패하여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전륜성왕의 길, 그리고 모든 존재를 해탈로 이끈다는 붓다의 길은 공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예언은 태자의 미래를 점지해준 것이 아니라, 태자가 두 갈래 길 앞에서 겪게 될 갈등과 번민, 그리고 결단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애는 아버지 숫도다나 왕이었다. 아시따 선인의 예언을 듣자 왕은 감격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선택은 단호했다. 붓다의 길이 참으로 고귀하긴 하나 내 아들이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한 일은 ‘붓다의 길’을 막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태자의 동선을 관리하여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한편, 궁중의 환락에 흠뻑 빠져들어 출가 따위는 생각도 못하게 했다. 물론 아버지의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모든 장애를 뚫고 아들이 출가를 선언하자 아버지는 옷이 다 젖도록 울며 아들에게 매달린다. 전륜성왕이 된 다음에 붓다의 길을 가면 되지 않겠느냐면서.


지금도 “그때 태자가 전륜성왕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전륜성왕을 마치 ‘메시아’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거대한 착각이다. 전륜성왕이 되기 위해선 무수한 정복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 아쇼카 왕 등을 떠올려 보라. 그다음에 붓다를 이루면 된다고? 천만에! 정복의 과정에서 쌓은 업장을 씻어내려면 최소한 ‘오만겁’은 더 걸릴 것이다. 태자가 그때 아버지의 눈물과 백성들의 염원을 받아들였다면, 붓다의 출현은 실로 요원했으리라.


성을 나와 숲으로 간 이후에도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숫따니빠따’ 3장 ‘마하 왁가’에 그와 관련한 스토리가 등장한다. 출가와 함께 태자는 고따마 사문이 되었다. 고따마는 북인도의 중심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이동한다. 탁발 음식을 얻기 위하여 시내로 들어갈 때 누각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마가다국의 제왕 빔비싸라였다. 그는 고따마의 ‘준수한 모습’ ‘고상한 발걸음’에 매료되어 시종들로 하여금 그를 뒤따라가게 했다. 사자들은 이렇게 보고한다. 걸식을 마친 고따마가 빤다와 산의 동굴로 가서 ‘황소처럼/ 사자처럼 앉아’ 있노라고. 왕은 산으로 달려가 고따마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갓 피어난/ 나이 어린 젊은 청년으로서/ 수려한 용모를 갖고 태어난/ 크샤트리아가 아닌지요?”(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그러고는 다짜고짜 “코끼리 부대를 앞세운 으리으리한/ 최상의 군대를 그대에게 드리”겠다고 제안한다. 자신과 함께 ‘왕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빔비싸라 역시 고따마의 청춘과 그 눈부신 카리스마가 아깝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고따마의 답변. 자신을 ‘태양족의 후예’ 싸끼야 가문 출신이라고 소개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왕이여, 나는 쾌락에 뜻이 없어/ 그 가문에서 출가했습니다.”


“쾌락에서 재난을 보고/ 욕망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러 가려고 합니다.”


빔비싸라는 “코끼리 부대”를 제안했는데, 고따마는 “쾌락의 재난”으로 응답했다. 코끼리 부대의 전투력은 제국을 더욱 확장하겠지만 그 성취의 대가는 결국 쾌락으로 이어진다. 또 폭력을 통해 얻은 쾌락은 재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은 그 괴로움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 이 장면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막 출가한 고따마의 처지에서 보자면 왕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는다는 건 엄청난 유혹이자 부담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수행의 고비마다 고따마에겐 욕계를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마왕의 속삭임이 울려 퍼진다. 그런 점에서 전륜성왕이 될 수 있었던 잠재력은 고따마에겐 가장 강력한 업장이었던 셈이다. 붓다의 길은 그 업에 대한 저항이요 탈주였다. 업의 강력한 흐름을 거슬러 가는 행위, 그것을 일러 수행이라 한다. 윤회론이 숙명론이 아니라 수행론이 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고로 붓다의 생애는 말한다. 업장을 소멸하고 싶은가? 혹은 팔자를 바꾸고 싶은가? 생각과 말과 행동의 경로를 바꾸라! 쾌락의 재난에서 깨달음의 길로!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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