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4.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라! - 정주에서 유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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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4-24 09:43 조회176회 댓글0건본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4.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라!
정주에서 유목으로
쓸모 다한 뗏목, 계속 짊어지고 갈 것인가
우기만 견디면 걱정 없다며 현재에 안위하는 목동 다니야
피안에 이른 이에게 낡은 뗏목이 필요 없음을 가르친 붓다
탄핵 강 건넜으니 이제 과거 말뚝 뽑고 새 연대로 나가야

인생의 몬순은 주기적으로 오지 않는다. 수시로, 예측할 수 없이 들이닥친다. 그림은 붓다에게 귀의하는 다니야. [AI 생성 이미지]
한 사람이 여행을 가는데 큰물을 만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려운데 저 언덕은 안온하고 평안하다. 하지만 저기로 건너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해서 그는 풀과 나뭇가지로 뗏목을 엮어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 뗏목이 나를 구했다! 그러니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뗏목을 지고 가는 건 무리다. 육지에 묶어 두거나 물에 떠나보내야겠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정답은 당연히 후자다. 이게 붓다의 유명한 아포리즘,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라’의 인연담이다. 붓다는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가르친 다르마[法]조차 그렇거늘 하물며 다른 것에 있어서랴!”
‘소치는 다니야의 경’에 이 아포리즘의 원형이 등장한다.
[소치는 다니야] “쇠파리들이나 모기들이 없고, 소들은 강 늪에 우거진 풀 위를 거닐며, 비가 와도 견디어낼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내 뗏목은 이미 잘 엮어져 있고 거센 흐름을 이기고 건너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더 뗏목이 소용없으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지난 호에서 보았듯이, 다니야는 붓다에게 자신의 부와 ‘스윗홈’을 과시했다. 이번에 다니야가 꺼내든 카드 역시 자산의 핵심인 ‘소’들에 관한 것이다. 몬순이 다가오는데도 소들이 느긋하게 풀 위를 거니는 풍경,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거기에 대한 붓다의 응답은 이번에도 좀 엉뚱하다. ‘뗏목을 잘 엮어 거센 흐름을 이기고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젠 뗏목이 필요없다’는 것. 다니야도 자기 나름의 피안에 도달했다. 우기마다 소들이 죽거나 물에 휩쓸려 가는 수난을 겪었을 것이다. 벌레들에 의해 감염병에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문제없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소들은 안전할 것이다. 이것이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다. 하지만 붓다가 보기에 거기에 머무르는 것은 ‘뗏목’을 지고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우기만 피한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인생 자체가 ‘몬순’ 아닌가. 게다가 인생의 몬순은 주기적으로 오지 않는다. 수시로, 예측할 수 없이 들이닥친다. 질병, 사고, 불화, 균열 등등. 그 폭풍우는 무엇으로 대비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 큰물을 헤치고 다음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건넌 강, 지나간 시절의 성취와 경험에 붙들려 있다. 뗏목을 지고 가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그 뗏목은 말뚝이 되어 버린다. 그 순간 꼼짝없이 붙들려 버린다.
지난 내란 사태 동안 나는 이 말뚝을 실감한 바 있다. 탄핵반대 집회에 나온 이들의 입에서 ‘간첩’ ‘빨갱이’ ‘멸공’ 등의 언어가 쏟아져나왔다. 저 언어들은 내가 강원도 광산촌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의 구호들이다. 나 역시 열정을 다해 거기에 부응했었다. 그것이 애국이라 굳게 믿고서. 그후 50년의 세월이 지났다. 세상은 아나롤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고, 곧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공산주의의 성지였던 소련이 망한 지도 어언 수십 년, 냉전이 해체되어 문명론자들이 ‘역사의 종언’을 고한 지도 아득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저런 ‘닳고 닳은’ 단어들이 이 ‘포스트 모던’한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다니. 적대적 이분법과 낡은 언어의 동어반복, 그것이야말로 말뚝의 전형이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 퇴행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전 과정에 깊이 새겨지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윤회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니야가 의기양양하게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외칠 때, 붓다는 “황소처럼 모든 속박들을 끊고” “다시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 순간, 골짜기와 언덕에 비가 쏟아진다. 천지를 뒤흔드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니야는 아내와 함께 붓다에게 귀의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우리로 하여금 괴로움을 끝내게 하소서.” 물질과 소유에 붙들려 사는 정주민의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 윤회의 싸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쉬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뗏목을 가차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또 큰물을 만나면 어쩌냐고? 다시 뗏목을 엮으면 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뗏목의 무한한 변주, 그것이 곧 유목이다. 정주에서 유목으로!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우리는 비로소 ‘탄핵의 강’을 건넜다. 작년 12·3일 밤에 시작된 몬순이 비로소 그친 셈이다. 그 사이에 광장이 열렸고, 수많은 연대가 있었고, 다양한 깃발과 구호가 나부꼈다. 우리로 하여금 거센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게 해준 참 소중한 뗏목들이다. 하지만 이제 강을 건넜으니 뗏목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다시 만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소망한다. 광장의 파토스가 일상의 현장에서 변주되기를! 지혜와 공감의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기를!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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