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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기고] 나는 숙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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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3-16 10:51 조회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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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2026-03-15

[창이지 김기숙] 

나는 숙모입니다

 

조카 교육까지 관여하려 한 나

사랑 지속하려면 선을 지켜야

 

나에겐 두 명의 시조카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늘 함께 해온 조카들은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고,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이고 싶었고, 좋은 옷을 보면 입히고 싶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나니 또 다른 마음이 생겼다. 조금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면 했다. 작은형님 내외를 설득해서 잘 다니고 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유치원으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 둘째 조카를 등 떠밀 듯 새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냈다. 처음엔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카는 ‘놀 친구가 없어’ 하며 눈물로 등원을 거부했다. 결국, 입학한 지 2주 만에 예전 어린이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산화비(山火賁·䷕)괘에서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산화비는 산 아래 불빛이 온갖 나무와 풀을 환히 비추는 형상으로, 겉을 아름답게 꾸미고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괘사(卦辭)에서는 ‘진실한 마음이 있어 꾸민다면 형통할 수가 있지만,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조금 이롭다’고 했다. 그런데 왜 조금만 이롭다는 걸까. 꾸밈은 바탕을 빛낼 수는 있지만 근본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 외에 다른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사랑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숙모로서 조카들을 돌보는 건 한 티스푼의 감미료로 맛을 더할 뿐, 주재료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조카들의 바탕까지 바꾸고 싶어 했다. 대상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명서정 무감절옥(明庶政, 无敢折獄)” 하라고 한다. 여러 상황을 낱낱이 보고 송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송사는 백성들에게 있어 재산과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일이니 실제 상황을 잘 살펴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꾸밈으로 이쁘게 포장하다 보면 진실을 가릴 수 있고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조카들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옷을 입히고 싶었고, 간식은 저녁은 어떻게 챙겨줄까 고민하다 결국 교육 문제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으로 다독이는데도 분명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권한 이상으로 뭔가를 하려 했다. 아이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 도움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짐작했고, 그렇게 나의 지나침은 어느덧 엄마의 색깔로 나를 꾸미고 있었다. 조카들은 부모로부터 이미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한 점 그늘 없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내가 임의로 그들의 삶을 바꾸려 했다. 내가 할 일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카들을 밝게 비춰주는 걸로 충분했다. 산화비괘가 주는 깨달음 후, 나는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챙겨주되 억지로 먹이려고는 하지 않았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어느 만큼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할 때도 있지만, 내 위치를 인지하고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을 대하니 한결 마음이 여유로웠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숙모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게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는 또 다른 방법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카들도 그들의 사랑으로 나를 밝게 비추고 있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 사랑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함부로 판단치 않을 어른으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매일 자라나듯, 나도 조금씩 성숙해 가며 한 폭의 조화로운 그림으로 곁에 서 있고 싶다.


/김기숙(인문고전공간 창이지)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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