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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기고] 산 넘고 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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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5-12 11:29 조회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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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2026-05-10

[창이지 남예주] 

산 넘고 물 건너

 

남 탓보다 부족함 채우려는 노력

산전수전 험난한 삶 견딜 힘 생겨

 

내 시어머니는 마흔넷의 나이에 홀로 되셨다. 열여덟 살에 곤궁한 집안에 시집을 왔더니, 시 계모 되시는 분은 새색시에게 시할머니를 맡겨두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만 데리고 살림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날부터 시작된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은 자식들을 하나 둘 낳으면서 더해만 갔다. 그러던 중에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병상에 누워 버렸고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셨다. 존재만으로 기둥이라 여겨졌던 그분이, 고된 일로 야윌 대로 야윈 아내와 어린 오남매를 두고 떠나버렸다. 남편이 있어도 힘겨운 삶이었는데 이제는 외발로 세파를 뚫고 걸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의 나이였던 마흔네 살에 결혼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여덟 살이었던 그 아이가 마흔이 넘어도 장가를 가지 않아서 애가 많이도 탔더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반가운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수시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옛날이야기처럼 들려 주셨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듯한 시어머니의 연속적인 고된 인생은, 험준한 산(山)을 넘어섰더니 험난한 물(水)이 앞을 가로막는 <주역>의 수산건괘(水山蹇卦䷦)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건괘를 읽으면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수산건괘는 외발로 걷는 사람이 험난한 구간을 마주한 상황이다. 괘사에서는 이럴 때 두려워하며 신중하게 걷고 도움받을 사람을 찾아서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했다. 당시 마흔이 갓 넘은 지리산 자락의 순박한 여인네가, 남편 없이 가진 것도 없이 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헤치고 나아가야 할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러나 두려움보다 큰 것이 모정이라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고 때로는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비관했던 기억을 들추기보다 당시에 고마웠던 사람들 이야기를 더 많이 하신다. 자신에게 고맙게 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올곧게 살면서 자식들을 키워 낼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수산건괘 대상전에서는 “산 위에 물이 있는 험난한 상황에서 군자는 자신을 돌아보고 덕을 닦는다(反身修德)”고 했다. 어머니는 일찍이 그러한 삶의 도리를 몸소 알고 살아오신 듯하다. 지난 일들을 떠올리면서도 신세 한탄이나 남을 탓하는 말은 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힘들 때 먼저 떠난 남편이나 주변 환경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냐고 여쭈어 보면 “남 탓할 게 뭐가 있노? 내 덕이 부족한 탓이지” 하면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내가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되게 살면 설마 하늘이 모른 척할까?’ 하는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딘 시간이라고도 하셨다.

<논어> ‘위령공편’에 “군자는 문제가 있을 때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문제가 있을 때 마다 잘못을 타인에게서 찾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있다. 험난함이라면 지겹도록 겪으신 어머니는 주저앉아 남의 탓, 원망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대신 자신이 부족한 점은 어떠한 노력을 해서라도 채우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힘들고 어려울 때 멈추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한편으로는 물처럼 유연하고도 강인함으로 산전수전의 험난함을 모두 이겨낸 인생이다. 오월은 감사의 달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를 되새겨 보게 하는 어머니 달이기도 하다. 며칠 전 어버이날에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덕분에 잘 자라준 좋은 남편과 사는 행복을 내가 누리고 있다고.

/남예주(인문고전공간 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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