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고미숙의 신기하고 만만한 서유기] 4. 손오공과 붓다, 그 운명적인 마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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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22 11:25 조회33회 댓글0건본문
법보신문 2026-07-21
[고미숙의 신기하고 만만한 서유기]
4. 손오공과 붓다, 그 운명적인 마주침!
오행산, 부처님이 기획한 수행의 로드맵
여래 앞에 무릎 꿇은 유한의 힘과 속도
‘죽음의 형벌’ 아닌 ‘깨달음의 길’ 제시
오백년은 ‘날뛰는 자만심’ 내려놓는 시간
열반·오행 결합, 불교·도교 융합도 엿보여

손오공은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여기며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살색 기둥 다섯 개’에 ‘제천대성’이라고 적었다.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 판화, 오하라 히가시노, 우타가와 토요히로 작화.
장생불사와 우주정복–손오공을 통해 드러난 욕망의 실상이다. 그 ‘난리블루스’ 앞에서 무극의 도를 터득한 옥황상제도 무위자연의 비조인 태상노군(노자)조차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서방에서 석가여래를 초빙하는 것뿐. 왜 여래인가? 마음의 ‘본래면목’을 터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원 전 5세기, 중국은 공자를 통해 ‘인(仁)’이라는 정치경제학적 윤리를, 노자·장자를 통해 무위자연의 도를 생사의 비전으로 세웠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단연 최고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으로도, 자연의 원리로도 통제되지 않는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마음이었다. 마음은 단지 선·악, 감성·이성의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훨씬 더 깊고 또 넓다. 붓다는 말한다. 우주의 근원에 작용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의식, 곧 마음이라고. 거기에서 빛과 물질, 천지만물이 탄생했다고-일체유심조! 그것은 유무의 이원론을 떠난 잠재태다. 그 무엇도 아니지만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허나 그것이 ‘자아’와 결탁하는 순간 탐진치 삼독으로 화한다. 손오공이 보여주듯 그 파괴력은 하늘궁전을 집어삼킬 정도로 격렬하다. 이런 마음의 출현 앞에서 유교도, 도교도 다 불가항력이었다. 파미르고원이라는 천연의 요새에 막혀 문명교류가 거의 없었던 오천축국(인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게 된 이유다. ‘서유기’는 말한다. 붓다는 신이 아니라 ‘우주 천하의 대 스승’이라고.
이리하여 손오공과 붓다, 그 운명적인 마주침이 시작되었다. 붓다가 묻는다. “대체 어디서 자라 언제 도를 깨쳤으며, 왜 이런 난폭한 짓을 하는고?” 손오공이 답하기를, “이 몸은 본시, ‘하늘과 땅이 낳아 길러 영험하게 신선 반열에 든, 화과산의 최고 원숭이로다. 수렴동에서 가업을 일으키고, 벗을 사귀고 스승을 찾아 우주의 도를 깨우쳤도다. 수련하여 여러 불로장생법을 이루었고, 광대무변한 변화의 법술을 익혔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다음. “그래서 범속한 세상은 협소하여 싫어졌으니, 반드시 하늘나라에 살리라 결심하였네. 영소보전이 옥황상제만 살 곳도 아니요…강한 자가 존귀한 법이니 마땅히 내게 양보해야지, 영웅은 이 몸뿐 누가 감히 겨루려 하는가!”(1권 216쪽) 맙소사! 도를 닦아 천지자연과 하나될 줄 알았는데, 거꾸로 하늘까지 다 차지하겠다고 설쳐댄다.
여래는 이 우주적 금쪽이, 아니 ‘또라이’한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한다. ‘근두운을 타고 오른쪽 손바닥을 빠져나간다면 옥황상제를 설득하여 하늘나라를 양도해주겠노라’고. 승부욕에 불타는 성질을 역이용한 것이다. 손오공은 즉시 수락, 여래의 ‘연잎만한 크기의 손바닥’에 올라탔다.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쉼 없이 한참을 달리다 살색 기둥 다섯 개가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자 여기가 ‘막다른 길’이라 여기고는 털 한가닥을 붓으로 변신시켜 기둥에다 휘갈긴다. -“제천대성 이곳에 와 노닐다.” 그리고는 기둥 아래 오줌을 찍! 싸놓고는 되돌아간다. ‘완벽한 승리!’라고 확신했는데 웬걸! 여래의 오른손 엄지에 자신이 써놓은 글씨가 있는데다 오줌 냄새까지 풍기자 그제서야 ‘현타’가 왔다. 지금껏 자기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는 사실을. ‘완벽한 패배!’ 그렇다. 유위법은 무위법을 이길 수 없다. 손오공은 더 빨리! 더 세게!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래의 ‘공성’은 ‘힘과 속도’라는 범주 자체를 해체한다. 유한한 능력으로 무량한 경계를 이길 방법은 없다.
이런 이치를 알 리 없는 손오공. 믿을 수 없다며 몸을 솟구쳐 뛰쳐나가려 하자 여래는 손을 뒤집어 서천문 밖으로 튕겨낸 뒤, ‘금, 목, 수, 화, 토’ 다섯 개로 이어진 오행산을 만들어 가뿐히 눌러놓았다. 그간에 한 짓거리로 보면 지옥행이 딱!인데, 왜 오행산일까? 옥황상제와 천군들은 어떻게든 손오공을 없애려 했지만 여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인다고 저 ‘마음의 행로’가 사라질 리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향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일단 ‘자연의 원리’부터 다시 깨우쳐야 한다. 죽음이 두려워 왕국을 버리고 길을 나섰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뜻. 이렇게 상황이 종결되는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옥황상제가 베푸는 축하연이 한창일 때 손오공이 다시 산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진짜 징한 ‘넘’이다. 여래의 두 번째 처방이 내려진다. ‘옴, 마, 니, 반, 메, 훔’ 여섯 글자가 쓰여진 부적을 오행산 꼭대기에 붙여두라! 그러자 바로 오행산이 뿌리를 내려 대지와 맞붙어 버렸다. 오행의 이치와 열반의 원리, 즉 도교와 불교가 ‘크로스’되는 순간!
그리고 서방으로 떠나기 직전 여래는 마지막 처방을 내린다. 먼저, 오행산의 토지신을 불러 배고프면 쇠구슬, 목마르면 구릿물을 주라고 당부한다. 이때부터 손오공은 장장 오백년을 오행산에 갇혀 있게 된다. 기나긴 고행을 통해 ‘미쳐 날뛰는’ 자만심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그래야 비로소 스승을 만날 수 있으므로. 악업을 정화하고 스승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여래가 설정한 수행의 로드맵이다.
“악행이 가득 차 몸은 비록 벌을 받으나, 선한 뿌리 끊이지 않아 기운 아직 왕성하네. 정말로 여래의 손을 벗어나려면, 당 왕조에서 성승이 나길 기다려야 하리.”(1권,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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