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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신기하고 만만한 서유기] 6. 삼장법사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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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8-21 11:42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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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6-08-21

[고미숙의 신기하고 만만한 서유기] 

6. 삼장법사가 왜 거기서 나와?

 

 

실크로드 건너 경전 구해 온 ‘위대한 역사’ 주인공

서유기 초기 버전은 현장법사 연상 시키는 구법승들 스토리
동물 캐릭터 추가로 이야기 구조 확장하며 ‘서사의 축’ 이동
실존 현장법사 생애와 다르지만 구도 향하는 구조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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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에 위치한 대자은사 앞의 현장법사 동상. [법보DB]

 

‘삼장법사가 세 명의 요괴제자들을 데리고 서천으로 가서 대승경전을 가지고 돌아온다.’ 이게 ‘서유기’의 줄거리다. 이렇게 정리하면 주인공은 당연히 삼장법사다.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뿐더러 스승이자 리더라는 역할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다. ‘서유기’를 읽다 보면 계속 고개를 꺄우뚱하게 된다. 주인공이 삼장법사가 아닌가? 등장 씬과 대사분량도 적은데다 그마저도 주로 요괴들에게 잡혀가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오공아! 나를 구해다오!’를 외치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1권이 끝날 때까지 삼장법사에 대한 복선은커녕 암시조차 없다. 그러다 뜬금없이 8회와 9회 사이에 ‘부록’으로 짠! 하고 등장한다. 아니, 삼장법사가 왜 거기서 나와? 주구장창 손오공의 ‘난리브루스’를 시전하다가 이 ‘넘’을 서천으로 끌고 가는 스승이 필요하니까 삼장법사 이야기를 후다닥 끼어넣었다고 볼 수밖에. 실제로 애초 전승되던 여러 판본에는 삼장법사의 내력이 없었는데, 우여곡절을 거쳐 ‘부록’으로 삽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서유기’가 어떻게 탄생했지? 첫 회에 언급했듯이, 현장법사가 천산북로와 남로를 다 거쳐 인도 나란다 대학에 가서 ‘유가사지론’을 마스터한 뒤 대승경전을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온 그 ‘위대한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던가. 그럼 당연히 주인공이 현장법사여야 하는 거 아닌감? 맞다! 하여 초기엔 현장법사를 연상시키는 구법승만 등장하는 스토리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왠지 좀 허전해서 원숭이나 돼지 같은 캐릭터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슬그머니 ‘서사의 축’이 후자로 옮겨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릇 이야기란 중생들의 ‘지지고 볶는’ 사건들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까. 그와 동시에 작품의 주제도 구법승의 영웅담보다는 탐진치에 ‘쩐’ 중생들의 수행담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리라.

부록의 제목은 ‘삼장법사의 출신과 복수’. 제목만 보면 영낙없는 막장드라마다. 때는 바야흐로 정관(당태종 년호) 13년. 널리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가 실시되고 진광예가 장원에 급제한다. 축하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한 누대 위에서 승상댁 규수 은온교가 그를 향해 공을 던진다. 남편감으로 점찍은 것이다. 그 시절 당나라의 결연풍속이었다. 이렇게 진광예와 은온교는 부부가 되었고, 둘은 진광예의 부임지인 강주를 향해 떠났다. 하지만 홍강 나루터에서 한 도적이 은온교의 눈부신 미모에 홀딱 반해 신랑 진광예를 죽여 물속으로 던져 버린다. 더 기막힌 건 이 도적이 진광예의 의복을 몸에 걸치고 황궁에서 내린 증표를 허리에 찬 채 강주 장관으로 부임했다는 것. 장관 노릇도 거뜬히 해냈다는 걸 보면 보통의 빌런은 아니다. 그럼 신부는 왜 그런 능욕을 감내했을까? 뱃속에 있는 아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적이 출장 중일 때 마침내 아기가 탄생한다. 엄마는 ‘내력을 담은 혈서를 쓰고, 발가락에 증표’를 새기고는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강물에 띄워보낸다. 이 바구니는 금산사 발치까지 흘러갔고, 아기는 스님들에 의해 길러진다. 시간이 흘러 열여덟 살이 되자 머리를 깍고 현장이라는 법명을 부여받는다. 여기까지가 영광과 비극이 격하게 교차하는 전반부다.

뒤늦게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된 현장. 곧장 강주로 가서 생모와 해후한 뒤, 다시 외가인 승상댁을 찾아 저간의 상황을 모두 고한다. 황제의 명으로 어림군 육만명이 강주로 진격하고 도적을 붙잡아 배를 가르고 심장과 간을 꺼내 죽은 진광예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어지는 대반전! 용왕이 진광예의 시신을 안치해두었다가 다시 환생시킨다. 그러자 황제가 그를 한림원 학사로 승진시키고, 현장은 홍복사로 돌아간다. 통쾌한 복수와 부활, 그리고 해피엔딩인가 싶지만 아니다! 생모 은온교는 조용히 자결을 택한다. 왜?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도적과 함께 산 세월이 자신을 더럽혔다고 여긴 탓이다.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덧씌운 굴레가 이토록 잔혹했던 것. 복수의 장면 역시 엽기적인 수준이다. 도적의 악행도 끔찍하지만 응징의 과정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게 과연 진정한 복수일까? 그러고 보면 요즘 드라마에도 복수담이 주를 이룬다. 빌런들의 잔인하고 비열한 행위, 이어지는 주인공의 사이다같은 대반격. 하지만 끝나고 나면 뭔가 찜찜하다. 왜 그럴까? 첫째 가혹하게 응징한다고 악행이 종결되는 건 아니다. 그 업장은 반드시 모습을 달리하여 되돌아온다. 둘째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폭력은 폭력이다. 폭력 그 자체의 관성을 어찌할 것인가. 따라서 진정한 복수란 당한 것보다 더 세게! 갚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 악행을 야기한 ‘연기적 조건’, ‘번뇌의 사슬’을 해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막장드라마는 실제의 현장법사의 생애와는 아주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실제 현장은 10살 무렵 부모가 병사하는 바람에 형을 따라 낙양의 정토사에 들어가 불교에 입문했다. 열세 살에 승과에 무시험!으로 합격할 만큼 기량이 출중했다. 실제의 현장이 어린 시절 이미 불교에 귀의했듯이, 소설 속 현장 역시 날 때부터 출가한 존재라는 건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전자는 자신의 힘으로 출가를 감행했지만, 후자는 운명적 조건에 의해 출가자가 되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비극과 복수’로 점철된 세속적 인연을 다 떨치고 진정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것뿐!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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