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학당] 2026 병오년 도담아카데미 '인문 기초' 1년 과정 수강생 모집 - 3/8(일) 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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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1-08 07:24 조회618회 댓글0건본문

2026 도담아카데미 <인문기초> 강사 인터뷰
<이 인터뷰는 유튜브용으로 만든 영상의 내용을 문답식으로 재편집 한 것입니다.>
Q.
2026년 도담아카데미 강사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올해는 안식년으로 1년 쉬셨고, 내년(26년) 1년짜리 도담아카데미 강좌가 시작됩니다. 우선 이 강좌의 제목부터 말씀해 주시면서 프로그램 내용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A.
강좌 제목이 ‘인문 기초’입니다. 1년 동안 인문학의 기초를 배우는 겁니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문학, 역사, 철학(문사철)을 비롯해서 종교, 예술, 인류학, 언어학, 인문지리 등의 학문들을 얘기하죠. 인문학은 이제 대중적인 학문이 된 것 같아요. 문턱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문학 관련 강의도 듣고, 세미나도 하고 혼자 책도 보고 그러시죠. 그런데도 대개 다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초심자분들은 어떤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우신 것 같고, 이것저것 접해보신 분들도 실력이 잘 늘지 않고 어렵다고 말씀하세요. 그건 뭐 독해력 때문일 수도 있고, 공부한 것이 연결되지 않고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남아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아무튼 초보도 그렇고 공부를 좀 하신 분들도 그렇고, 그분들이 인문학 공부를 할 때 기초가 되는 그런 강좌를 한번 기획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
기초가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특히 역사나 철학이 그런데.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철학적 개념들이 서로 연결돼서 어떤 기초적인 개념의 연결망이 만들어지는거죠. 그런 지도가 머리 속에 있으면 공부하는 효율이나 속도가 아주 높아집니다. 이때부터 지식들이 서로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사유가 확장됩니다. 그래서 이 강좌는 초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인문학의 맥락적 기반이랄까요, 그런 기초가 필요하신 모든 분들에게 필요한 강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간은 얼마를 잡는 게 좋을까? 1년은 해야 돼죠. 주요한 개념은 되풀이되면서 등장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지식을 쌓고 그러면서 연결망을 만들어가는 기간이 1년이 적당하다. 1년이면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문 기초 1년 과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그러한 인문학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강의하시나요?
A.
핵심은 ‘고대의 역사와 철학’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지리학’이 들어갑니다. 전 이것이 인문학을 하는데 기초 중의 기초라고 생각해요.
Q.
아, <역사, 철학, 지리>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고대’이구요. 이것이 인문학의 기초이군요. 그러면 하나씩 질문할게요. 왜 역사입니까?
A.
우선 인문학에 역사가 많이 나와요. 문학에도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고, 다른 학문에도 역사는 꼭 들어갑니다. 일상에서도 역사는 항상 접하게 되어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과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뉴스에서 나오는 여러 국제 분쟁들도 대부분 아주 오래된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기본적인 세계사의 굵직한 흐름을 알고 있는 것이 인문학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고대사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의 뿌리이기 때문에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모든 역사는 현재적이고 현재와 연결되어 있어요. 지금 여기도 역사적 시공간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역사적 개체예요. 과거의 사건을 독립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재와 연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두께’가 생기는 거죠. 역사 공부라는 것이 그런 시간의 두께들을 통찰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런 통찰로부터 오늘의 사건들이 지닌 흐름과 방향에 대한 안목이 길러져요. 그것도 역사 공부의 중요한 효용성이죠.
무엇보다 역사 공부에는 어떤 ‘기묘한 울림’ 같은 게 있어요. 역사가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시대마다의 절실함이랄까, 그런 힘들이 감각됩니다. 우리는 대개 건조하고 냉랭하게 역사를 바라봅니다. 물론 그것은 대체로 괜찮은 합리적인 학문 태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시대에 놓인 절실함을 감각 할 필요도 있어요. 각 역사적 순간에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절실한 문제의식이 존재해요. 역사에는 그런 시대의 숨결과 긴장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 강렬함을 지금 우리의 감정 코드로 환원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맥락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거예요. 요즘 사극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왕과 궁녀의 관계를 개인적 사랑과 현대적 로맨스로 미화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당시 왕과 궁녀는 국가 시스템의 일부에요. 생사가 달려 있는 왕실의 권력 구조 안에서 그런 개인의 감정들을 엮는 건 시대를 잘 못 번역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뭐 시청률도 올려야 하고 재밌게 만들려고 하니까 그랬겠지만.
기묘한 울림은 오히려 철저하게 우리의 감성을 유보하고 그 시대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그 시대가 당면했던 문제,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와 희망, 당대 철학자들이 부딪힌 사유의 한계와 돌파의 순간이 있었겠죠.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고 같은 문제의식을 상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그 시대가 던진 질문을 오늘의 나에게 다시 묻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가 박물관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장으로 보입니다. 그럴 때 ‘울림’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전혀 낯설게 다가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이엔 친목과 갈등의 구조, 약육강식의 동물적 욕구들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익숙하지만, 기술 문명적 차이와 시대적 분위기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겠죠.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감각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전제군주 시대의 ‘신민(臣民)’으로 살아간다는 것,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생존한다는 것 같은 억압적이고 암울한 감각도 있을 테고, 또 혁명의 주체가되는 경험, 프랑스혁명같은. 그럴 때 느껴지는 두려움과 황홀함, 이런 것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중세의 수도사, 조선 시대의 선비, 산업혁명기 노동자, 냉전기의 지식인 등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지만 실제 그 시대가 품고 있던 낯선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상상력이야말로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기묘한 울림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의외로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해석과 함께 증폭됩니다. 가볍게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겠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혜택으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또 이런 풍요로움 속에서도 극심한 불안과 열패감이 왜 일어나는지 새삼 궁금해질 수도 있습니다.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바라보며, 오히려 깊은 허무나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밀려올 수도 있겠죠. 어찌되었든, 이런 질문들이 쌓이면서 역사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지고, 우리는 역사와 개인 사이를 오가면서 이해의 지평을 계속해서 확장하게 되는 거죠.
Q.
역사가 단순히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를 통찰하는 존재론적 탐구이기도 하군요. 그렇다면 철학은 왜 넣으신 겁니까?
A.
철학은 역사와 같이 갑니다. 철학을 빼고는 역사의 변천과 흐름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역사와 철학은 맞물려 있어요. 종교개혁 없이 데카르트를 설명할 수 없고, 데카르트 없이 근대성을 설명할 수 없어요. 2차세계대전 없이 실존주의를 얘기할 수 없고, 실존주의 없이 냉전을 말할 수 없어요. 보통 역사와 철학이 분과학으로 나눠져 있지만 전 이 두 개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항상 용어들이 어려운 것 같아요. 일상적 용어처럼 보이는데 해석이 안 돼요.
A.
맞습니다.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철학 개념어와 일상 용어와 같아서 그래요. 만약에 의학 용어로 되어 있는 텍스트라면 아예 읽어내질 못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그 용어들을 익히면서 시작할 텐데, 철학 텍스트는 특별한 개념어 빼고는 일상 용어와 같이 쓰이는 개념어가 꽤 많습니다. 그래서 그냥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죠. 예를 들어 ‘실재’라는 말이 있어요. 실재는 영어로 리얼리티(Reality)거든요. 우리가 일상에서 리얼리티, 혹은 리얼하다고 말할 때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하죠. 그런데 서양 고대에서는 이 말이 현실적인 것 배후에 있는 더 근원적인 것을 의미해요.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겁니다. 이런 입장이 현대로 오면 점점 현실적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돼요. 리얼하다는 감각이 서로 다른 거예요. 이 밖에도 많아요. ‘재현’, ‘형상’, ‘자연’, ‘자유’, ‘주체’ 이런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시대마다, 철학자마다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번 강좌에서 기초 용어들을 계속 정리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철학은 뭐랄까, 좀 특별한 점이 있긴 해요. 철학을 공부할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강렬함이 있어요. 단순히 일상적 지혜나 삶의 요령을 익히는 정도에 그치지 않아요. 삶 전체를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다가온다고 할까요. 내 존재와 세계를 흔들며 육박해오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때론 그 강렬함 자체가 일상의 번뇌를 넘어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의외의 효능감이죠. 그게 개인마다 다 다르게 때문에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다른 공부와는 차원이 좀 다른 영성적 힘이 있어요. 물론 그 힘도 잘 조율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그런 지적 깨달음에서 오는 힘은 삶을 추동하는 중요한 에너지가 되고, 특히 삶의 전환기마다 어떤 직관과 용기를 줍니다. 그런데 그런 크고 작은 깨우침들이 일어나려면 텍스트를 조금 깊게 파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문턱이 약간 높습니다. 그래도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도 반복해서 힘들게 읽고 그런 식으로 스스로 어려운 책들을 독파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입구에서 좌절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이런 기초 강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초 과정을 거치면 입구에서 한두 발이라도 더 들어갈 수 있어요. 근데 그 한두 발 차이가 엄청납니다. 뭔가 시작할 기회를 주거든요. 좌절의 입구에서는 철학에 대한 반감만 일어나기 쉬워요. 입구를 지나면 다릅니다.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욕망이 일어나요.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기회를 얻기까지는 도움을 좀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그 한두 발 걸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1년 정도 잡은 것이고, 뭐 1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지리학은 왜 넣으신 거예요?
A.
역사적 사건을 기술할 때는 늘 장소를 얘기해야 돼요. 언제 일어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게 어디서 일어났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위치가 갖는 지리학적 의미가 그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는 인구가 늘고 발전을 거듭했지만 전제국가로 이행되지 않고 도시국가로 남았죠. 그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스의 도시들이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리고 또 우리가 역사 시간에 흔히 비교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성격이 서로 다른 것도 보통은 지리적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상대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개방적이고, 이집트 지역은 폐쇄적입니다. 이 차이가 두 문명의 역사적 전개와 정치, 종교, 문화 등 문명 전반의 특성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바다, 산, 강, 평원, 해안, 내륙, 이런 지리적 환경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강의할 때 항상 지도와 함께 봅니다. 강의안에 지도가 계속 들어갈 거예요. 지도를 같이 보고 역사의 장소를 되짚으면서 현재는 어떤 나라이고 어떤 지리적 환경인지도 배울 겁니다. 지도에서 사건이 일어난 곳을 찾으면서 배우면 역사 공부가 열 배는 더 재밌어집니다.
Q.
그런데 왜 많은 시대 중에서 ‘고대’인가요?
A.
역사와 철학의 기초는 ‘고대’에 있어요. 고대의 역사는 현재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현대적인 사건들의 원류엔 고대가 있는 겁니다. 고대를 모르면 늘 역사적 근원에 대한 목마름이 생깁니다. 고대의 범위는 서로마 제국 멸망과 춘추전국시대까지로 한정했습니다. 그런데 강의에서는 ‘고대’만 하는 건 아니에요. 전반적인 시대를 어느 정도는 다 다룹니다. 고대의 역사와 철학을 기본 커리큘럼으로 깔고 가면서, 동시에 고대의 역사와 철학이 어떻게 중세, 근현대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봅니다. 예를 들어, 고대 유대교의 역사에서는 신바빌로니아라는 제국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후에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이 있어요. 이것을 ‘바빌론 유수’라고 부릅니다. 이 바빌론 유수 이후에 유대인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거든요. 이걸 ‘디아스포라’라고 해요. 근데 이 디아스포라가 현재의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이어집니다. 그런 걸 강의에서 살필 건데, 그 과정에서 드레퓌스 사건, 에밀 졸라, 시오니즘, 이스라엘 건국,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Q.
철학도 고대의 철학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 않나요?
A.
철학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대에 인류의 지성이 폭발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의 제자백가들이 활약했고,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이때 등장한 철학자들이에요. 인도에서는 붓다, 마하비라가 활동했고, 중동에서는 조로아스터가 있었죠. 이 시대를 ‘축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 쏟아져나온 지적 유물들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유의 근간이 되고, 인간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깊은 토대가 되고 있어요. 고대 철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수업에서는 고대 철학을 공부하면서 근현대 철학자들과 자주 연결시키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고대에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배울 때는 헤겔이나 니체와의 연관 관계를 함께 강의하고, 플라톤을 강의할 때는 헤겔이 플라톤을 어떻게 계승했는지, 그리고 하이데거, 니체, 들뢰즈가 플라톤을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함께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굴비 꿰듯이 엮어서 공부하면 개념들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아요. 고대 철학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시대, 특히 근현대의 철학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깊게 들어가진 않지만, 아무튼 헤겔과 니체의 사상을 접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러한 작은 꾸러미는 또 다른 개념의 꾸러미들과 만나서 다시 연결되는데, 이런 식으로 인문 기초가 자리를 잡습니다. 특히 헤겔 같은 경우엔, 헤라클레이토스 진도 나가기 전 역사론 강의 시간에 배우거든요. 그때 배운 걸 또 연결시키게 되면서 이해가 더 쉬워지고 개념도 확장되고 그럴 겁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강의가 더 재미있어집니다.
Q.
근현대 철학자들이 많은데 어떤 철학자를 배우게 되나요?
A.
칸트, 헤겔, 스피노자,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아도르노, 아렌트, 푸코, 들뢰즈, 로티, 그리고 최신 유행하고 있는 사변적 실재론도 다룰겁니다. 간단하고도 핵심적인 개념 위주로 강의 할 겁니다. 단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물음이 어떻게 근현대로 이어지는지 살피는 과정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간단하고도 핵심적인 개념 위주로 강의 할 겁니다. 단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물음이 어떻게 근현대로 이어지는지 살피는 과정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특히 칸트,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는 중요해요. 인문 기초를 쌓는데 매우 중요한 근현대 철학자들입니다. 이 네 철학자를 이해하면, 근현대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 기초>를 닦기 위해 ‘고대’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도 이 철학자들을 놓치지 않고 함께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Q.
이런 유명한 철학자들을 배울 수 있어서 매우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어려운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A.
역사는 비교적 쉬운데 철학이 좀 어렵긴 해요. 근데 이 강좌가 초심자들을 위해서 기획된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철학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한 문장’과 ‘도식(도해)’이에요. ‘한 문장’이란 ‘전체 맥락을 꿰는 핵심적인 한 문장’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강의 준비를 하면서 어떤 복잡한 개념 혹은 한 권의 책에 들어 있는 중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작업을 했어요. 어려운 책 한 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도 있는데, 뭐 꼭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내용이 많긴 한데 진짜 중요한 개념을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어요. 다만 여러 개념을 넣다 보니 문장이 약간 길어지고 자연스럽지 않은 점은 있죠. 예를 들어 볼까요. 어려운 책이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만들어 봤어요.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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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인간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히기 위해, ①감성, 오성, 이성, 상상력이 작동하는 초월(론)적 조건과 그 한계를 규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②과학적 인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정당화하며, ③순수이성의 초월적 환상을 변증론적 오류로 비판한다. |
문장을 읽어도 무슨 말이진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나면 이해할 수 있어요. 여기 보시면 번호가 있죠. 강의안에 각 번호마다 설명이 있어요. 그것을 강의로 쉽게 해설해 드립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이 문장을 보면 이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더 강력한 것이 있어요. 바로 ‘도식’이에요. ‘도해’라고도 하는데, 개념을 그림으로 그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도 제가 아이패드 굿노트로 다 만들었어요. 도식을 이용해서 설명하면 철학의 여러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몇몇 인문학 초심자들을 대상으로 검증을 해보기도 했고요. 어떻게 생긴 건지는 밑에 사진으로 참고해 보세요.

이런 도식이 꽤 많습니다. 강의할 때 도식을 많이 활용할 겁니다. 그러면 이해가 훨씬 빠르고 쉬워요. ‘한 문장’은 주로 철학 위주로 만든 것이고, 도식은 철학과 역사 모두에 들어갑니다. 도식을 설명하고 나서 강의안 글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확인한 다음에 한 문장을 다시 보면 정리가 싹 됩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이 도식을 직접 그려보거나 반복해서 보면 쉽고 효율적인 복습이 되는데, 도식을 머릿속에 넣은 뒤에 강의안을 천천히 읽어보면 기억이 더 오래갑니다. 그리고 매 강의안 뒤에는 원전을 포함한 참고 서적이나 추천 서적을 적어드리니까 더 공부하고 싶으면 그런 책들을 사서 보면 더 좋겠죠. 바로 원전을 읽어도 좋고, 참고 서적을 읽어도 좋습니다. 강의를 듣고 나면 읽어볼 용기가 생길 겁니다.
커리큘럼에 대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buRexZN5q2Q&t=27s
Q.
이제부터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시간엔 <역사론>을 강의하시는군요.
A.
네 <역사론>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게 보이긴 한데요. 역사론을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처럼 할 생각은 없고, 중요한 철학자들의 역사관을 비교하는 것으로 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해요.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아도르노, 아렌트, 푸코 등의 역사관을 비교할 겁니다. 이 수업은 여러 의미가 있어요. 우선, 철학자들의 다양한 역사관을 접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고, 더불어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인문 기초>를 세우는 충실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역사에 대한 관점이 철학자가 놓인 시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칸트와 헤겔은 프랑스혁명을 보며, 이성과 자유가 현실에서 실제로 실현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역사가 필연적인 진보의 경로에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세기의 사상가들, 특히 아도르노와 아렌트는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라는 압도적인 야만을 경험합니다. 그런 경험은 진보 사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켜요. 계몽이 야만으로 변질되는 걸 본 거죠. 결국 철학자의 역사관은 그들이 발 딛고 선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자들의 역사관을 배우면서, 우리가 강의에서 역사를 다룰 거잖아요. 거기에서 그런 사관들을 접목시켜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보통은 소크라테스 이후 이성과 논리가 발달하면서 서구 문명이 진보했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니체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니체가 보기에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 예컨대 아킬레우스 같은 인물들은 분노와 욕망, 운명까지 숨기지 않고 그대로 살아갔습니다. 삶의 비극과 잔혹함까지 긍정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인간들이었죠.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면서 “왜 그렇게 사는가”, “논리적으로 옳은가”를 따지는 대상이 됩니다. 니체는 이것을 인간이 더 현명해진 게 아니라, 삶을 말과 개념으로 통제하려 들기 시작한 변화로 봤어요. 그래서 본능과 욕망은 억눌리고, 생의 힘 대신 합리성과 올바름이 숭배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니체는 소크라테스보다 소피스트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소피스트들은 세계가 본래 혼란스럽고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사람들이고, 소크라테스의 절대적 진리는 그 혼란을 견디지 못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비판하죠. 니체의 관점이 옳으냐를 떠나, 역사를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마르크스는 고대 문명을 ‘노예제’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구조물로 봅니다. 예를 들어 로마를 보면, 보통은 군사력이나 법, 뛰어난 황제들 덕분에 제국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마르크스는 로마의 핵심을 ‘노예제 생산양식’에서 찾습니다. 당시 전쟁도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할 노예를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행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게 되고 노예 공급이 끊기자, 경제적 토대가 무너졌고 그 결과 제국이라는 상층 구조도 붕괴했다고 봅니다. 아테네의 고대 민주주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노예들의 노동 덕분에 여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런 해석은 마르크스의 역사관, 즉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고, 그래서 초반에 이 개념부터 배우게 됩니다.
푸코의 관점도 꽤 흥미롭습니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자기 배려’라는 개념을 끌어내요. 우리가 흔히 고대 윤리를 떠올릴 때 빠지는 오해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을 단순한 자기 인식이나 지적 탐구로만 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윤리를 지켜야 할 고정된 도덕 규칙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푸코가 보기에 고대인들에게 윤리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윤리는 나를 관찰하는 지식이나 법에 복종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의 기술이었습니다. 푸코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진리가 삶의 태도와는 무관한, 순수한 지적 능력의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결과 고대의 “너 자신을 알라”도 단순한 지성의 문제로 오해되었다는 거죠. 푸코에 따르면 고대의 윤리는 자기 인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짜 자기 인식은 식사, 운동, 대화, 글쓰기 같은 일상의 실천 속에서 자신을 돌보고 단련하는 ‘자기 배려’를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고대인들에게 윤리란, 자기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가꾸려는 능동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이 <역사론> 강의는 여러 철학자들을 다루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이걸 몰아서 하면 처음부터 개념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한꺼번에 하지 않고 다른 진도와 함께 나가면서 한 강의당 한 사람씩 할 예정입니다.
Q.
두 번째 시간에 <세계지도, 세계사 개괄>이 있네요. 어떤 내용인가요?
A.
일단 지도를 같이 볼 겁니다. 여러 지도를 강의안으로 드릴 거예요. 세계 전체 지도, 대륙별 지도, 산맥지도, 반도지도, 강지도 등을 드려요. 이걸 같이 봅니다.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구분해서 보기도 하고, 특별한 지형들을 짚어보기도 할 겁니다. 중요한 바다, 산맥, 강, 평원, 사막은 어디에 있고, 문명이 어떤 지형에서 발생했는지, 그 흐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살펴볼 겁니다. 예를 들어, 지중해는 고대 문명의 요람 역할을 했던 좀 특별한 바다입니다.
중국 지형도 재밌습니다. 흔히 듣던 ‘중원’이라는 곳은 어디이며, 산서, 산동, 하북, 하남, 요서, 요동은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그리고 주요 강인 황하, 회수, 양쯔강과 고비사막, 티벳고원, 타림분지 등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볼 겁니다.
그리고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겁니다. 크게는 서양사와 중국사로 나누어서 크게 크게 개괄해서 볼 거예요. 이렇게 크게 훑고 나서 수업을 들으면 훨씬 재미있습니다. 제가 계속 역사와 철학을 강의하면서 이것이 어느 시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환기할 겁니다. 그때마다 수강생들은 지도를 떠올리거나 찾아볼 수 있겠죠. 그리고 크게 조망했던 세계사의 흐름 중에서 어느 시대쯤의 이야기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시야를 넓혔다 좁혔다 하면서 공부하면 내 안에서 구조가 만들어지죠.
Q.
3강의 제목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매우 철학적인 질문 같아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A.
철학적이기도 하고 인류학적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인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보통 역사라고 하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이고, 그 전의 시간을 다루는 것은 멸종된 인류를 다루는 고인류학 기반의 학문이나, 혹은 빅히스토라라고 해서 역사의 범위를 빅뱅으로 확장시킨 거대사가 있습니다. 3강은 일종의 빅히스토리에 해당하긴 합니다만, 우주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과정은 짧게 언급할 것이고,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다루기 시작해서 현생 인류까지의 과정을 배울 겁니다. 이 강좌가 <인문 기초>이잖습니까. 인문학 지식의 총체를 한 번 다뤄보자, 그런 취지에서 기획한 건데, 3강이 과학과 인문학의 애매한 경계에 있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자를 다루기 위해선 그 뿌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필요할 것 같아서 전반부에는 생물학적 인간이 탄생하게된 과정을 설명할 것이고, 후반부에는 인간의 특이점에 대한 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살피게 됩니다.
3강의 전반부는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라는 책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칼 세이건과 그의 세 번째 부인이 함께 쓴 책입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쓴 분으로 유명하죠. 두껍긴 하지만 어렵진 않습니다. 책 초반에는 태양계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 그리고 지옥 같았던 지구의 초기 환경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고, 생명의 출현하고 진화하는 과정이 지구의 판이 움직이고 열이 발생하는 환경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이 동식물을 개량해왔죠.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교배하면서 젖이 많이 나오는 양을 만들어내고 그랬습니다. 인간이 짧은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새로운 변종을 만들 수 있다면 자연 또한 수십억년 동안 환경에 적합한 개체를 선택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또 모든 생명체는 DNA라는 동일한 유전 체계를 통해서 정보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강의 시간에는 DNA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도 그림을 가지고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유전적 뿌리를 공유하는 친척 관계라는 겁니다. 이 책 제목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거든요. 저자는 여기서 조상을 최초의 생명체로 보고 있는 겁니다.
초기의 지구 생명체들은 노폐물로 산소를 배출했습니다. 그랬더니 대기에 산소가 많아졌죠. 산소는 세포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소 때문에 많은 종이 멸종하거나 산소가 없는 깊은 바다나 땅속으로 숨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진화의 과정에서 일부 생명체가 오히려 산소를 에너지 원료로 쓰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근데 산소를 에너지로 사용하니까 더 효율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된거죠. 그렇게 식물과 동물이 공생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생명체는 무성 생식으로 번식했어요. 그러니까 암컷, 수컷 이런 성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서로 다른 성이 등장합니다. 성이 다른 두 개체의 유전자가 섞이니까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전례 없는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게 큰 장점이 있는데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해로운 돌연변이를 걸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생명의 진화를 가속화합니다. 성이 없는 무성생식의 경우는 단일한 개체가 반복적으로 같은 복사본을 만들다보니까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집단 전체가 멸종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해로운 돌연변이가 생겨도 이를 제거할 방법이 없어서 세대가 거듭될수록 나쁜 유전자가 축적됩니다. 성이 다르면 돌연변이 유전자를 걸러낼 수 있어요. 생존엔 훨씬 유리하죠.
그런데 대신에 노화와 죽음을 감당해야 해요. 무성생식은 사실상 개별적 죽음이 없어요. 영생에 가깝습니다. 근데, 성을 가진 다세포 생물은 자손을 번식하는 것으로 자기 유전자를 이어갑니다. 그리고는 늙어서 죽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는 이어지지만 ‘개체의 죽음’이라는 것이 생긴 거예요.
몸을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생식세포와 체세포. 생식세포는 다음 세대로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세포이고 우리 몸에선 정자, 난자에 해당해요. 그리고 체세포는 나머지 이 몸뚱아리입니다. 체세포는 유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일회용 운반체 같은 겁니다. 자연 선택 관점에서 볼 때 일단 유전 정보가 성공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고 나면 이 운반체인 체세포는 진화적으로 살아 있는 게 낭비에요.
그리고 중반쯤에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인류가 자랑하는 고등한 지적 능력과 의식은 본능이나 무의식과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다. 이성과 본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 협력하고 자기희생하는 것도 동물과 비슷하고, 지배와 복종의 서열 구조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인간 사회에 내재된 정치적 본능이나 영토 보존을 위한 전쟁 같은 것도 침팬지 사회와 비슷하게 일어납니다. 그 안의 자체 윤리로 폭력을 억제하는 기전도 비슷하고 심지어 도구를 쓰는 거,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지능, 언어, 문화, 자아의식 등도 다른 영장류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속에 동물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데 많은 공을 들입니다. 물론 저자들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 내면에 잊혀진 조상들, 그니까 원시 생명체부터 유인원에 이르는 진화 과정이 새겨놓은 본능과 행동 양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철학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관점을 살피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된 지구 생명의 본능이 있다는 것을 감각함으로써 우리가 이성적이고 고결하다고 믿어왔던 인간의 행동 뒤에 숨겨진 생물학적 필연성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살피면서 우리가 늘 놓치고 있는 게 동물의 본능이라는 측면이거든요. 이런 생물학적, 진화인류학적 관점도 역사관의 일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의 특이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입니다. 많은 논의가 있겠지만 저는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베르그손은 생명체가 진화해서 신경계가 복잡해질수록 자극이 들어온 뒤에 반응이 나가기까지 시간적으로 지연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은 자극이 들어오면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찌르면 움츠러들고, 먹이가 있으면 다가갑니다. 여기엔 거의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반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자극을 받아도 잠시 멈춥니다.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상황을 판단한 뒤에 반응합니다. 인간은 더 극단적입니다. 누군가 나를 모욕해도 즉시 주먹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화를 참을 수도 있고, 말로 대응할 수도 있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 ‘사이의 시간’,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이 바로 의식이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베르그손은 이 지연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식의 수준이 높아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봅니다.
인간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동물도 잠시 망설이지만, 본능이 곧 작동합니다. 배고프면 먹고, 위협을 느끼면 도망갑니다. 하지만 인간은 배고파도 단식할 수 있고, 두려워도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베르그손은 이 틈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이 틈은 양면적입니다. 이 틈으로 인간은 자유를 얻기도 하지만 번뇌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우리는 이 틈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과 맞서야 하며 어떤 실천들이 필요한가, 그런 논의가 필요할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주체와 관련한 것도 있을 테고 인류학적인 측면도 살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들뢰즈의 ‘수동적 종합’, 바타유의 ‘금기의 위반’,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등의 개념을 가지고 쉽게 설명드릴 겁니다. 이것이 3강의 후반부, 또는 4강의 초반까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4강의 내용은 멸종된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를 현생 인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멸종된 다른 인류종이 있다는 말이죠. 멸종된 인류 종들을 보면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이 있습니다. 약 700만년 전,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분화했어요. 이 지점에서 첫 인류종으로 분류되는 종이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여기서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인류종은 약 25종 정도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해서 이렇게 멸종된 인류까지 포함한 인류를 호미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멸종된 호미닌의 시작점은 어디서부터인가, 하고 생물학적 단계를 봤더니 그게 ‘직립’으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네 번째 강의 제목이 <직립, 대지에서 우주로>인 거죠. 그리고 그 직립을 일으킨 존재자에 철학적 상상력을 더해서 직립이 단지 생물학적 진화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론적 도약’이라는 가설을 통해서 직립과 관련된 진화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겁니다.
멸종된 호미닌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 이전의 불완전한 단계를 살펴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원을 추적하는 동시에,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아왔던 오래된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인간 이전과 인간 바깥의 존재들을 다시 사유하는 작업입니다. 또한 과학적 사실이 닿지 못하는 지점에서 철학적, 인류학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인간다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층적으로 묻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직립이라는 하나의 생물학적 사건을 존재론적 도약으로 다시 사유해보는 이 강의들은,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열려 있는가 하는 질문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관점을 전환하며, 익숙한 인간상을 낯설게 만드는 사유의 훈련 자체가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3강, 4강까지 설명해 주셨는데, 다른 주제의 강의들도 한두 개 소개해 주세요.
A.
다 흥미로운 주제들이지만 한두 개 더 보자면, <이소노미아와 철학의 기원> 강의는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인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이라는 책을 참조해서 만든 강의입니다. 철학의 시작을 대체로 ‘밀레토스 학파’로 봅니다. 탈레스가 물을 근원 물질이라고 주장했다는 건 꽤나 알려진 거죠. 탈레스를 비롯한 밀레토스 학파가 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탐구가 이 책에 핵심 내용입니다. ‘이소노미아’라는 말은 ‘무지배’라는 뜻이에요. 당시 그리스 식민지였던 이오니아 지역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이 없는 평등한 사회 체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식민지라고 해서 본토에 속박되어 관리를 받는 제국주의 식의 식민 통치 같은 건 아니에요. 그리스 본토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이주를 해서 원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형식이고, 본토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적 시민지였어요. 이들이 식민지 이주민이다보니 기존의 씨족사회의 전통과 단절을 했고, 자발적 계약으로 평등한 폴리스를 만들었습니다. 이오니아 지방에서 시작된 이 이소노미아의 원리는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이런 지적 유행을 따라 이소노미아 원리가 식민지인 이오니아에서 그리스 본토로 유입되었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렇지만, 두 도시국가 모두 이소노미아(무지배)를 실현할 수 없었고 각각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정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으로 변주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소노미아라는 독특한 원리는 이오니아 지역에서 실현되고 있었죠. 그러다가 이오니가 리디아와 페르시아에게 침약을 당하면서,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가 지배를 하니 무지배의 원리인 이소노미아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졌을 거 아닙니까. 바로 이 시점에서 철학이 탄생했다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이에요. 평등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배층은 씨족적, 신화적 전통을 가져옵니다. 이 전통이 제시하는 건 조상 때부터 신이 정한 질서가 있다는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혈통적 위계가 있어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는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거죠. 이때 탈레스와 자연철학자들이 이러한 신의 질서에 저항하면서 신들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기원이 되는 거죠. 이렇게 세워진 자연철학은 단순한 자연 탐구가 아니라, 위계 없는 사회를 되찾기 위한 사회철학이었다고 보는 겁니다. 자연철학의 특징이 ‘스스로 움직이는 물질’이라는 개념이거든요. 이것도 물질이 신의 작용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거죠.
여기선 압축적으로 말씀드렸는데,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면 더 재밌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수업 시간엔 한 걸음 더 나가는데,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이 신화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났으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신적 존재를 도입하거든요. 이것이 중세 신학의 기반이 됩니다. 그리고 중세에 자연철학이 억압되어 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합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브루노라는 철학자는 자연이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살아 있는 창조자, 즉 ‘능산적 자연 개념’을 제시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스피노자라는 철학자가 이 생각을 이어받아 ‘신은 곧 자연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하나의 완벽한 철학 체계로 정리 합니다. 수업 땐 이런 내용까지 다루게 될 겁니다.
Q.
커리큘럼 후반부에 있는 동아시아 철학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우리에게 친숙한 공자, 맹자도 있네요.
A.
네 공자, 맹자를 비롯해서 제자백가를 다룹니다. 이 사상들을 공부할 때 중요한 건, 용어들의 개념을 잘 구별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 의, 예’ 이런 용어들이 중복해서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사상가들 마다 그 개념의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공자의 경우, ‘인’은 ‘예’라는 행위 규범을 내면으로 체화해야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인은 다시 예로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인과 예의 끝없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인’이 비로소 완성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자에게 ‘인’은 반복된 후천적 수양을 통해 완성해 가는 도덕적 품성인 거죠. 맹자는 조금 다릅니다. 맹자는 ‘인’이 이런 식의 후천적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인의 씨앗이면서 타고난 본성인 ‘사단’을 잘 보존하고 확충해야 획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맹자에게 인은 완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배양해야 할 근원인 거죠. 그런데 맹자 역시도 사단을 보존하고 확충하려는 후천적 노력이 필요하긴 한 거죠. 그러면 공자의 노력과 맹자의 노력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건 수업 시간에 알려드릴게요. 이 부분이 정말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공자의 ‘극기복례’는 스피노자의 ‘3가지 인식 단계’라는 개념과 연결하고, 맹자의 성선설은 주자의 ‘성즉리’ 사상과 비교할 겁니다.
Q.
이 <인문 기초> 1년 강좌가 어떤 분들에게 필요할까요?
A.
어떤 공부든 앎의 토대라는 게 필요하죠. ‘고대의 역사와 철학’이야말로 모든 공부의 토대가 아닐까요?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분들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과학, 의학, 운명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과 사고방식의 뿌리가 필요할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앎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특히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더 직접적으로 필요한 강좌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나 철학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큰 지도를 그릴 수 있거든요. 이런 지식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갖추면 다른 공부를 하거나 어려운 강의를 들을 때 훨씬 유리합니다. 사탐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세계사>와 <윤리와 사상> 선택한 친구들이 들으면 좋아요. 강의 시간이 일요일 오후 4시니까 저녁 먹기 전까지 편하게 앉아서 그냥 듣고만 있어도 도움이 될 겁니다.
Q.
도담 아카데미는 늘 일요일 4시경에 시작하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A.
그때가 절묘한 시간입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출퇴근하시는 분들 기준으로 크게 부담이 없는 시간입니다. 금, 토에 어디 여행을 가도 대개 일요일 2, 3시 정도엔 집에 도착하잖아요. 그러면 씻고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이 비어요. 일요일 저녁을 먹은 이후엔 티비도 보고 좀 쉬면서 월요일 준비해야 하는데, 공부하려면 좀 부담이 될 테고요. 주중에 하면 저녁 시간을 따로 빼야 하는데, 일요일 4시는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비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줌이라 집에서 들을 수 있고요.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숙제도 없고 시험도 없습니다. 강의를 듣고 나서 주중에 강의안에 있는 도식을 보면서 짬짬이 복습을 하면 더 좋고요.
Q.
완전 초보자들도 들을 수 있나요?
A.
당연하죠. 초보자들을 위해서 만든 강좌입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철학 개념은 추상적인 상상력이 좀 필요해요. 그러나 조금만 용기를 내시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데 필요한 것은 기존의 지식이 아니라 용기예요. 제가 찬찬히 안내를 하면서 갈 테니까 좀 깊이 들어가더라도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중요한 개념은 반복할 것이고 어려운 건 예시를 통해서 이해할 수 할 수 있도록 할게요. ‘도식’과 ‘한 문장’으로 환기하면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문 기초’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Q.
끝으로 이 강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
A.
동서양 전반의 역사와 철학을 엮어 구조화하는 강의는 흔치 않습니다. 파편화된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유의 흐름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1년 강의이지만 일정이 그렇게 빡빡하진 않습니다. 4주 정도 하다가 한 번씩 쉬고, 여름 휴가철엔 한 달 정도 쉽니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겪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보람도 클 겁니다. 1년 동안 들었던 <인문 기초> 강의가 자신을 위한 큰 선물이었다는 걸 확신하게 될 겁니다. 도전해 보세요.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주세요(도담학당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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