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에 맞은 자는 사방으로 헤매고 있다.” 스스로 맞춘 화살은 사방으로 헤매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야하는 교육의 의무와, 부모님이 원했던 대학교육, 그리고 남자라면 대부분 가야 하는 군대에서는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 의무들을 다 마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사방으로 헤맸다. 현장의 갈등을 견뎌내지 못 하니 어디에서 일을 하든 힘들면 그만두기 일쑤였고, 이리저리 방랑했다. 여기까지 오니 화살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지금 공부하는 여기도, 현장의 갈등을 견디지 못 하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도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고, 같이 먹는 밥이 맛있고, 같이 뭔가를 할 수 있어서 좋은데,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
부처님은 “그 화살만 뽑으면 떠돌지 않고 안주한다”고 하신다. 내 가슴에 스스로 꽂은 화살을 한 번 보자. 화살에 이름표가 있다면 이렇게 쓰여 있을 것 같다. ‘지기 싫다. 지면 쪼다 되는 거다. 지는 순간 열등해진다.’ 현장의 부대낌에서 지면, 상대 의견을 따르면 나는 열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른 이와 지지고 볶는 상황에서 스스로 물러선다. 그래야 패배하지 않고, 열등해지지 않으니까. 그런데 정말 갈등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면 열등해지는 걸까? 나는 언제 우열을 느꼈는가?
어려서부터 같은 학년 내에서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당했고, 그 안에서 선두에 서려고 노력했다. 성적이 좋으면 우월감을 느끼고 성적이 떨어지면 나보다 앞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운동경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온 힘을 쏟은 상황에서 이기면 행복했고 지면 슬픔을 넘어서 열등감까지 갔다.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내 체육대회, 지역 간 경기, 국가대항전까지.
반면 부처님은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그리고 동등한 것도 없다고 말하신다. 이 말은 비교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동등한 것조차 없다고 하시니까. 나는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승패라는 기준으로 끊임없이 비교하고 나를 들들 볶았다. 그런데 부처님 말에 따르면 비교가 안 된다는 거니까 기준이라는 게 전혀 쓸데없다고 하신 것 같다. 그 기준은 정말로 쓸데없는가? 기준이 있으면 그걸 기준으로 위는 좋은 것, 아래는 나쁜 것. 우월, 열등, 동등이 생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오로지 경쟁일 뿐이다. 누굴 만나도 친구가 된다기 보다는 그냥 경쟁자일 뿐이다. 소통과 우정이랑은 멀어진다. 그저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그게 안 됐다. 그런데 왜 붙잡고 살까? 그게 뭘 주지? 모르겠다. 고통만 주는 걸 붙잡고 살았다.
부처님은 화살을 뽑은 뒤에 안주하면서 공부하라고 하신다. 또 어떤 화살에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다. 어떤 공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을 꿰뚫어 보고 탐욕에서 멀어지는 공부. 그러고 나서 하시는 말은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부정이 아니다. “성자는 진실하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중상하지 않고 친절해야 하고 사악한 이기심과 탐욕을 극복해야 한다.” 도덕책과 부모님, 기성세대를 통해서 무수히 들은 얘기지만 글을 쓰고 들으니 다르게 들린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솔직해져라.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피해주는 일도 아니고,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