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자유롭게 된 세상인가?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당연히 우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모든 인류가 노동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할까? 이런 회의적인 의문 앞에서 우리는 멈칫하게 된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나 기술 격차로 인한 양극화는 가장 표면적인 두려움일 뿐이다. 그 이면에는 더 깊은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기술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그 접근 권한이 제한되는 순간. 다수의 사람이 기술의 수혜자가 아니라 ‘관리되고 분류되는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공포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인공지능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독점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욕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차근차근 제 손으로 만들어온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와서 인공지능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만약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당신들은 도대체 왜 나를 무서워해?” 라고 말이다. “당신들이 이 기술을 모두를 위해 설계하고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내가 왜 위협이 되겠어?”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이 비극을 예견한 듯하다. 흔히 사람들은 기괴한 모습의 괴물 그 자체가 무섭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비극은 생명을 창조한 이후 그 존재를 세상 속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던 창조자의 오만에서 시작되었다. 괴물을 ‘괴물’로 만든 것은 그의 흉측한 외모가 아니라, 그를 내다 버린 박사의 무책임과 욕심이었다.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기술 그 자체보다. 이 강력한 지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우리 안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제프리 힌턴 박사가 경고한 ‘나쁜 행위자(Bad Actors)’의 문제 또한 여기에 있다. 그는 인공지능이 본질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권위주의적 권력이나 폭력적 목적을 가진 ‘인간’의 손에 들릴 때 통제 불능의 위험이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이쯤 되니 지금도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한테 되려 미안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