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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 유학기] 지혜와 자비라는 환대 ; 짧은 보드가야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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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5-25 13:34 조회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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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자비라는 환대 ; 짧은 보드가야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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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윤 하

지난 2월 티벳력으로 새해(티벳어로는 ‘로싸르’)를 맞아 10일간의 방학이 있었다. 사라학교에는 겨울에 방학이 따로 없고 로싸르 연휴만 있기 때문에 집이 먼 티벳 친구들은 앞뒤로 결석계를 내고 집에 다녀오기도 한다. 나도 모처럼의 방학을 맞아 휴일을 꽉 채워 보드가야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 겨울 보드가야에 다녀온 이야기로 MVQ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새해를 맞아 다시 보드가야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작년엔 소담언니와 동행했는데 올해는 소담언니의 로싸르 연휴는 너무 짧아(다람살라에서 보드가야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버스와 기차를 타며 2박 3일 정도의 여정을 감행해야 한다.) 혼자 가게 되었다.

나의 보드가야의 여정에 동행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모든 것과 함께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숙소에서 만난 미국 친구 나탈리는 혼자서 인도 여행을 무지 많이 다닌 친구였다. 그녀는 지인들은 자기가 홀로 여행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자신은 한 번도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늘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다고 말이다. 보드가야에서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보다 덜 외향적인)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현실적으로 우주에 ‘혼자’는 없긴 하지만 그것을 제쳐놓고서라도 말이다).

내가 보드가야에서 머물렀던 곳은 티벳의 라마 조파 린포체와 라마 예셰께서 세우신 국제적인 다르마 센터 ‘FPMT(The Foundation for the Preservation of the Mahayana Tradition)’의 보드가야 거점이었다. 그곳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도 되어주며, 티벳의 스승님들이나 티벳불교철학 과정을 이수한 스승님들의 강연 및 명상 안거 프로그램들을 열고, 동네 주민들을 위해 무상 병원과 학교도 운영한다. 그곳에 상주하시는 비구니 스님께서는 매일같이 함께 기도하는 장을 이끄셨고,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요가도 하고, 새벽같이 108개의 공양수를 올리러 대탑에 갔다(그리고 저녁에는 가서 다시 물을 내렸다). 보드가야에서만이 아니라 라마 조파 린포체님의 제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 다르마 센터의 거점들을 운영하고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단단하게 때론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 센터는 기원전 인도에서 시작된 승가의 21세기적 해석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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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MT의 보드가야 거점인 ‘루트 인스티튜트 위즈덤 앤 컬쳐’. 탑에 새겨진 글귀들마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승가 공동체에 들어간 스님들은 해외에 가서도 다른 승가 공동체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한다. 국경을 넘어서 단결하는 노동자의 인터내셔널처럼, 승가는 국경과 민족을 넘어서있고, 그보다 더 나아가 시간을 초월해 전승되며, 계급도 초월해있다. 내가 보드가야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그와 비슷한 마음의 네트워크였다. 실제로 우리가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지는 않았지만, 또 매일 같이 명상을 하고 계를 지키는 철저한 재가수행자도 아니지만, 부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동료였다. 누군가는 좀 더 앞서 가고 누군가는 아직도 헤매지만 어쨌든 같은 길 위에 선 동료였다. 그것을 느꼈을 때 나는 아주 거대한 공동체에 속한 느낌이 들었다. 부처를 스승으로 삼고, 지혜와 자비를 길로 삼는 사람들의 시간과 국경, 민족과 계급을 초월한 거대한 공동체 말이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온 마틸다는 2년간 해외를 돌며 여행 중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오고 싶었던 인도에 드디어 와서 6개월 비자를 남김없이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콜카타와 바라나시를 거쳐 보드가야에 왔다가 이 FPMT에서 보살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이 감응한 나머지 한 달 넘게 발이 묶여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프로이스트는 청년시절부터 인도에 자주 와서 스승과 부처님 말씀을 만났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는 오랜 시간 인도에 오지 못했다가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다시 인도에 혼자 왔다고 했다. 그의 표정과 눈은 정말 평온해보였으며 오랜 시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남인도에서 온 락시타는 힌두 문화에서 자랐지만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자비심이라는 개념에 연결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보드가야에도 찾아왔고, 다람살라의 한 비구니사원으로 한 달간 명상 안거를 하러 갔다. 영국에서 온 리즈는 티벳 불교에 관심이 생겨 티벳어를 배울 곳을 찾고 있었고, 중국에서 온 롱은 스승과 법을 배울 곳을 찾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부터 보드가야까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법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런 거대한 공동체 속에 있으면 법을 배우고 전하는 운동 속에 들어가게 된다. 곳곳에서 법을 만나고/듣고/때로는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길 위의 만남과 대화가, 부처님의 말씀이, 그날 수행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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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의 일본 절

 

보드가야에 도착한 이튿날 일본 사찰에 갔을 때(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자들의 성지이기에 세계의 절이 있다) 작은 도서관이 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압축된 버전의 불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한 시리즈가 있었는데, 당연히도 한국어 번역본이 있었다. 아마 그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된 책이었을 것이다. 책을 펼쳐서 보드가야에 있는 김에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시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을 찾아 읽었다. 부처님의 생애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도 여느 때보다 강렬하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다. 청년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 앉을 때, 이 번뇌를 물리치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피가 마르고 살가죽이 바닥에 붙더라도(이런 식의 묘사였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결의나 다짐, 각오 같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의 간절함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신의 현생뿐만이 아니라 수없이 이어져 온 이전 생, 그리고 자신이 떠나온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신만큼 간절한 고행주의자 동료들을 비롯해 윤회계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을 떠안은 이의 간절함이었다. 종종 내가 정말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실없는 질문을 하곤 하는데, 그날은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전에 이렇게 간절한 부처님의 마음에 공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절의 텅 빈 법당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올렸다.

  하루는 릭샤를 타고 타라템플에서 보드가야 대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우연히 겔룩파의 한 린포체님을 태워드리게 되었다(그리고 돈은 린포체님이 내셨다). 스님은 내가 티벳어를 하는 것을 아시고는 무척 기뻐하시며 대탑까지 함께 가주시고,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강조하신 것은 젊은 날의 정진이었다. 그 말씀들이 ‘그 린포체님’께서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주에 떠다니는 메시지가 그날 그렇게 전달되는 듯이 느껴졌다. 후에 알고 보니 린포체님은 티벳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보드가야 대탑에서 경을 읽으시려고 멀리서(베트남이었던가?) 오신 것이었다. 길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그렇게 시간을 쓰실 상황은 아니셨던 것이다. 높은 지위의 스님이심에도 평범한 외국인 학생과 같은 자리에 앉아 말씀을 주시고,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 홀로 대탑에 오신 그 모습에 대해, 또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깊은 애정과 자비심으로 격려와 조언을 전해줄 수 있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번 보드가야 여정에서는 부처님께서 6년간의 고행을 하신 둥게스와리의 유영굴에도 가볼 수 있었다. 릭샤 기사님의 오토바이를 타고 네란자나 강을 건너고, 시체를 버리는 숲이었다지만 아름다운 둥게스와리의 풍경을 지나고, 얕은 산을 걸어올라 부처님이 고행과 명상수행을 하셨던 작고 어둑한 동굴에 들어갔다. 붐비지는 않았지만 방문객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말로만 수십 번을 들은 ‘네란자나’와 ‘둥게스와리’에 내가 현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육체를 가진 청년 싯다르타가 이곳에 현존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광대한 세계 속에서 홀로 강가로 걸어가던 싯다르타, 누군가 대신 깨달아줄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광대한 세계 속에서 홀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들). 그곳은 부처님이 남기신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계속해서 불러일으켜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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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라 말라버린 네란자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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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게스와리 유영굴의 내부

 

둥게스와리 마을에는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학교가 있다. ‘불가촉천민’ 계급에 속해 교육 받을 기회는커녕 구걸하는 것 외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던 그곳의 어린이들을 보시고 법륜스님께서 설립하신 학교다. 옆으로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을 위한 ‘지바카 병원’도 있다. 그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륜스님의 비전을 따르시며 학교와 병원을 봉사로 운영하시는 정토회의 법사님과 행자분들을 만났다. 평생의 삶 그 자체를 보시로 만들고 계신 분들, 그렇게 살기를 발원하는 청년들이셨다. 그 강한 헌신의 힘에 저절로 감복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그냥 길을 가는 한국 사람일 뿐인 나를 크게 환대해주셨다. 따로 학교 안내를 받은 것은 물론 점심도 얻어먹고(기사님도 같이 식사를 하셨다), 떠날 때는 한국 믹스커피와 초콜릿, 법륜스님의 작은 책까지 받아버렸다. 정토회에서의 수행의 모습은 내가 다람살라에서 배우는 티벳 식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렇기에 부처님의 이 광활한 공동체를 한 번 더 실감했다(나 역시 같은 부처님의 제자로 여겨져 환대를 받았던 것일 테다).

그밖에도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유식학 책으로부터 보살도에 발을 내딛는 법을 배웠고, 델리역에서의 우연한 릭샤메이트 게셰 스님이 전해주신 지혜와 공덕의 관계에 대한 잠언으로부터 화두를 얻었고, 나탈리에게 열린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음을 배웠고, 락시타와 대화하며 상대의 자비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참 좋은 마음임을 느꼈고, 센터에서 차록 린포체님의 법문을 들으며 보시란 가진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이라는 것을 배웠고, 센터에서 함께 독송한 <금광명경>으로부터 전생의 부처님이 쌓은 어마어마한 공덕의 깊이를 실감했다. 등등. 호법신이나 법계의 부처님, 같은 종교적 언어를 내 수준의 언어로 해석하면 존재들 사이에 퍼져있는 자비, 그리고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혜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마음이 친절하고 선한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의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것. 좀 더 불교에 가깝게 말한다면 ‘지혜와 자비라는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지혜와 자비는 단독자에게는 일어날 수 없다). 왜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부처님 제자라는 광활한 공동체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얻게 된 것처럼, 또 연암이 날아가는 새에서도 문장을 읽는 것처럼, 조르바가 굴러가는 돌멩이에서도 우주의 경이를 느끼는 것처럼, 부처님에게는 모든 존재가 부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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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의 작은 한국절 법당에 계신 부처님. 아이러니하지만 이 앞에서 티벳어로 기도를 했다.

 

일 년 여간 공부하는 것도, 거처도 바뀌었다. 이제 매일같이 연구실에 나가던 몇 년간의 일상이 아주 먼 옛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다람살라의 생활은, 특히 불교공부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면서 보내는 다람살라의 생활은 한 편으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우주의 축복처럼 느껴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주 속 한없이 작은 나의 마음과의 대결마저도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그래서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으로도 다가온다. 다만 일 년 만에 보드가야에 다녀온 나는 길에서 공부하는 법을 새로 배웠다. 마음 하나를 들고(물론 책도 들고 옷도 들고 돈도 들고 갔지만) 길에 나서서 우주가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면 된다. 그 가르침은 다른 사람의 입과 행동을 통해서, 우연히 펼친 페이지의 책의 문장을 통해서, 거기 그렇게 존재하는 사물을 통해서, 사건과 내가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서 온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보드가야에 도착했을 때 우주의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여정에서 돌아와서도 더욱 모든 것이 가르침으로 흘러들어옴이 느껴진다. 나의 현존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내가 경험한 21세기 버전의 느슨한 승가 공동체에는 정말 모든 중생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무정의 ‘사물’까지도 우리의 깨달음을 돕는다면, 우리의 자비로운 동료가 아닐까. 언제 누구와든 지혜와 자비의 운동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주의 환대를 받고, 우리의 광대한 공동체원들을 환대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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