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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괴로움에 질문하기, 고난이 구제가 되는 마주침을 만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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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3-16 10:46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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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 질문하기, 고난이 구제가 되는 마주침을 만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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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 화 (금요 감이당 글쓰기아카데미)

  

3. 마음의 방향이 변화하는 팔십일 난

삼장과의 동행, 욕망의 변화가 일어나다

나의 욕망과 패턴의 ‘진짜’ 모습은 안락함 속에서는 못 본다. 안락함 속에 머물면 자기를 확장하는 사심 가득한 욕망의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마치 요괴들처럼 말이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괴로움으로 부르는 욕망의 방향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길은 고난에서 이루어진다. 팔십일 난을 겪으며 딱딱한 욕망의 패턴이 말랑해지기 시작한다. 왜일까? 마음이 마음대로 못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난에선 요괴들과 사건들은 물론 삼장밴드 서로가 서로의 편안함을 엄청나게 침범하고 깨뜨린다.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도 마찬가지다.

오행산에 갇혀 오백 년을 애타게 기다린 스승을 만난 손오공은 그 기다림이 무색하게 삼장을 떠난다. 왜냐하면 손오공이 두 사람의 앞길을 막아선 장정 여섯 명을 때려죽이고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크게 꾸짖는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손오공은 화가 치솟아 삼장을 떠난다. 오백 년을 기다린 사부님을 한순간에 떠나 버린다.

팔십일 난 초반에 벌어진 관음선원 금란가사 소동에서도 손오공은 화가 난 만큼,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다. 관음선원의 노승이 삼장의 금란가사를 빼앗기 위해 거처에 불을 지를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아챈 손오공은 잠을 자는 삼장 위로만 불을 피하는 천을 덮어주고 관음선원 전체를 불태워 버린다. 큰 절이 순식간에 불지옥으로 변한다. 금란가사를 되찾지도 못하고 절과 생명을 불태운 손오공은 삼장의 긴고아주에 큰 고통을 받는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고 당연하게 패턴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삼장법사가 그 패턴에 끼어든다. 거기에 긴고아까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스승과 돌머리도 터질 듯이 아프게 만드는 긴고아는 손오공에게 타자가 주는 거리낌을 쉼 없이 준다. 그러나, 이 타자는 손오공이 부른 것이다. 스승도 손오공 스스로 모셨고 결국 긴고아도 손오공 자신의 손으로 썼다. 내 안에 손오공과 같은 독선적인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손오공이 삼장을 부르고 긴고아를 쓰는 것처럼 타자를 내 안에 들이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는 것이다.

손오공이 삼장과 붙어있을수록 삼장의 존재는 커져간다. 그러면서 손오공은 점점 다른 면모를 보인다. “사부님은 낯선 여러 나라를 몸소 다녀야만 고해(苦海)를 초탈할 수 있지. 그래서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드신 거야. 너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부님을 보호해서 몸과 생명을 위태롭지 않게 하는 것일 뿐(위의 책, 3권 50쪽)이라는 말을 하고 초반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스승님을 보호하고자 한다. 또한, 삼장의 근심을 덜어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여인국’의 여왕이 삼장과 부부가 되고자 하는 고난에서 손오공의 입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는 ‘선(善)’에 대한 말이 줄줄 나온다.

“사부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손이 맵고 무기도 살벌해서, 조금만 손을 써도 이 나라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릴 겁니다. 저들이 비록 우리 길을 막고 있긴 하지만, 괴물이나 요괴가 아니라 한 나라의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도 평소에 자비를 잘 베푸시는 분이라 오는 길에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해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때려죽인다면 사부님의 마음으로 어찌 그걸 참아내겠습니까! 그건 정말 선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위의 책, 6권 107-108쪽)

손오공이 삼장의 마음을 헤아린다! 상황이 급해도 패턴의 급발진보다 선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우선한다. 이제는 손오공이 ‘삼장의 방향’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삼장법사는 그 말을 듣고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듯, 꿈에서 처음 깨어난 듯, 기뻐 근심을 잊고 칭찬하며 고마워”(위의 책, 6권 109쪽)한다. 손오공과 삼장이라는 두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되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다.

손오공이 고난을 함께 하며 보고 겪은 것은 무엇일까? 삼장법사의 구도(求道)의 모습이다. 삼장법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해치지 않는 순간을 함께 한다. 그리고 돌머리 손오공이 감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손오공의 몸 밖에 계신 삼장 말고도 원숭이의 갖가지 마음 중에 ‘삼장’도 있기 때문이다. ‘삼장’은 다른 생명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비심’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탐(貪), 진(嗔), 치(痴)는 물론 자비심도 있다. 어떤 상황을 만나면 가장 강력한 놈이 튀어나오겠지만 『서유기』는 이 마음들이 다 내 안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타자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마주침이 있었다. 그 순간은 안락함이 아닌 고난 속에 있었다. 기후활동도 그중 하나다.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세상에서 다른 존재를 정말 보고 인지하는 사건이었다. 다른 존재들이 내 시야와 사고에 들어오니 나와 세상의 관계가 정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욕망만 추구하는 길이 어떤 일을 만드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온갖 괴로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활기차게 활동을 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무섭지 않고 친척(?)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활동은 그전까지 내가 했던 어떤 일보다 가시적인 성취가 없었지만 성취에 ‘불만족’하거나,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활동을 그저 했다. 마음이 둘로 쪼개지지 않으니 내 안에 싸움이 없었다. 마음에서 벌어지는 싸움만 없어도 에너지는 정말 많이 절약되었다.

고난의 길에서 손오공은 점차 삼장을 마음으로 모시게 되며 신이 나고 힘이 난다. 손오공은 자신의 몸보다 삼장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데 더 힘쓴다. 사람의 탈을 썼기에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요괴로 인해 어깨와 머리에 태산(太山)들을 짊어지는 것도 홍해아의 불길에 죽다가 살아나는 것도 삼장과 함께하고 그를 위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는 것이다. 손오공처럼 마음의 방향이 ‘오직 나’를 벗어나면 나의 안락함이라는 욕망 자체가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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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들이 내 시야와 사고에 들어오니 나와 세상의 관계가 정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욕망만 추구하는 길이 어떤 일을 만드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온갖 괴로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활기차게 활동을 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무섭지 않고 친척(?)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활동은 그전까지 내가 했던 어떤 일보다 가시적인 성취가 없었지만 성취에 '불만족'하거나,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활동을 그저 했다. 마음이 둘로 쪼개지지 않으니 내 안에 싸움이 없었다.

 

중생구제와 자기구제에는 선후가 없다

지금까지는 자기성취를 자기구제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자기구제의 탈을 쓴 자기성취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중생구제를 넘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선 자기구제를 해야 남들도 구할 수 있다고 선후관계를 지어 생각했다. 그래서 중생구제가 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자기 마음의 방향은 바꿀 가능성이라도 있어 보이는데 ‘중생’이라는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속이 빈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괴로움에서 구하는 자기구제로 한 발짝 나가기도 벅찰 텐데 말이다.

『서유기』를 봐도 삼장은 태어나길 훌륭한 스님이고 손오공은 신묘하게 태어난 재주 많은 요정이어서 중생구제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처럼 읽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팀원들 덕에 알았다. 팀 세미나를 하며 얻게 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바로 손오공 혼자서 해결한 고난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팔십일 난을 넘어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손오공이다. 사고도 많이 치지만 뛰어난 재주와 전략으로 삼장법사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그 대단한 손오공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모든 바다와 땅, 하늘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구한다. 토지신, 저승신, 바다신, 천신들, 그리고 하룻밤 묵어가는 마을과 국경을 통과하는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을 받는다! 무엇보다 관음보살님과 석가여래님은 손오공을 내치는 일 한번 없이 도움을 준다.

특히 때려죽이는데 도가 튼 손오공의 손으로 생명을 살렸던 것도 관음보살님의 도움이 있었다. 바로 ‘인삼과 나무’를 살린 일이다. 손오공과 저팔계는 귀하디귀한 인삼과 나무의 열매를 훔쳐 먹는다. 어린 동자들이 노발대발하자 손오공은 화가 치솟아 인삼과 나무를 뿌리째 망가뜨린다. 나무 주인인 ‘진원대선’은 삼장밴드 모두를 벌주려 하자 삼장법사가 걱정된 손오공은 자신이 나무를 되살려 놓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사실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기사회생의 방법을 찾고자 한다.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의 신선들, ‘동화제군’에게 물어도 ‘신령한 뿌리를 가진 나무’를 살릴 방법은 없다는 말만 듣는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낙가산 보타암 자죽림’, 관음보살님이 계신 곳이다. 사정을 들은 관음보살님은 “어째서 일찌감치 나를 찾아오지 않고 섬으로 가서 찾으려 했느냐?”(위의 책, 3권 168쪽)라고 말하며 손오공의 손에 감로수를 부어 인삼과 나무를 되살린다.

손오공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겪는다. 손오공은 정과(正果)를 이루고 긴고아를 벗기 위한 자기구제의 길을 가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나 도움을 구하고 도움 받는다. 자기구제의 길을 간다고 매 순간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고난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홍해아와 싸우고 가짜 손오공이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마다 ‘고난을 구제하는 존자’가 손오공과 삼장밴드를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도움과 구제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자비를 실현하는 삼장을 모시고 서천을 향하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원숭이의 왕 시절 조공만 받아 봤지,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도 감사인사는커녕 콧방귀를 뀌던 손오공이 감사함을 표현한다. ‘통천하’ 고난 중 들리게 된 ‘진가장’에서 동남동녀를 잡아먹는 요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손오공은 팔계와 함께 재물로 변하여 자신이 잡혀간다고 한다.

손오공 : “너와 내가 이 댁에 들어와서 감사하게도 성대한 공양을 받았고, 그러고도 넌 또 배가 안 부르다고 투덜대지 않았느냐? 그래놓고 어째서 이 댁의 재앙을 구해주려 하지 않는 게냐?“

삼장법사 : “얘야, 네 사형의 말과 처신이 백 번 천 번 지당하구나. 속담에 ‘사람 목숨 하나 구하는 게 칠 층 불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더냐.” (위의 책, 5권 207쪽)

손오공이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이야기한다니? 게다가 중생구제를 실천한다니?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서 공양을 받아오는 역할은 항상 손오공의 몫이다. 처음엔 동냥하러 가서도 화를 내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제는 보시한 집안을 재앙에서 구해 주려한다. 받은 것에 보답하고 사람들의 슬픔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당장 통천하를 건너는 일이 막막하고 영취산까지 갈 길이 구만리인데도 말이다. 손오공은 아이로 변신해 재물로 바쳐지고 아이들을 잡아먹는 요괴를 퇴치한다. 손오공이 중생을 구원하면서 길을 가는 것이다. 손오공의 이러한 변화는 저팔계까지 음덕(陰德)을 쌓게 만든다. 이러한 모습은 삼장의 마음에 흡족하다. 삼장법사와 제일 척지던 손오공인데 이제는 손오공의 말과 처신이 ‘백번 천번’ 지당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의 괴로움을 없애고 싶어서 공부 공간을 찾았다. 그래서 ‘내’가 공부를 해서 괴로움이 해결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괴로움에서 건져준 것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공부다. 나는 많은 도움을 받는 자기구제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중생구제를 받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이다. 『서유기』를 같이 읽은 팀원들, 2025금성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모여있을 때나 흩어져 있을 때나 서로가 영향을 미치며 연결되어 있다. 괴로움을 직면하게 하고 ‘서쪽’ 방향을 함께 찾아보자고 괴로움에 덤벼든다. 서로에게 삼장이 되어주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되어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고난 길을 가고 있지만 그 각자의 길을 함께 겪으며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이 공유되고 생성된다. 그렇기에 힘의 밀물과 썰물은 있지만 방전은 없다. 나의 힘만이 아닌 도움 받은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길도, 단신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어느새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길 위의 우리들은 서로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을 새가 없이 연결되어 있고 어느 찰나도 끊어져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생각들과 괴로움을 이고 지고 왔어도 느린 발걸음이지만 나를 구제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것처럼 나도 자기구제의 길을 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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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겪는다. 손오공은 정과(正果)를 이루고 긴고아를 벗기 위한 자기구제의 길을 가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나 도움을 구하고 도움 받는다. 자기구제의 길을 간다고 매 순간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고난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홍해아와 싸우고 가짜 손오공이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마다 '고난을 구제하는 존자'가 손오공과 삼장밴드를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도움과 구제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자비를 실현하는 삼장을 모시고 서천을 향하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부처님이 계신 곳에 도착한 삼장밴드는 피안(彼岸)의 땅에 가기 위해 배에 오른다. 사부님을 태우러 온 배에 감사해하면서도 손오공이 삼장에게 덧붙인 말.

“사부님이나 저희나 모두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서로가 모두 돕고 의지한 것이니까요. 저희들은 사부님 덕분에 해탈하고, 불문을 통해 공을 닦아 다행히 정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도 저희들의 보호를 받아 불법의 가르침을 지켜 다행히 세속의 태를 벗게 되었습니다.” (위의 책, 10권 230쪽)

중생구제도 자기구제가 이루어지는 길 위에 있기에 감사받을 일이 아닌 것이다. 중생구제는 자기구제를 이루고 나서 엄두를 내 볼만한 ‘다음 단계’가 아니다. 중생구제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자기구제가 이루어진다. 자기구제를 향한 손오공의 중생구제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계획도, 성취도, 베풂도 아닌 것이다. ‘서로’ 돕고 의지한 것일 뿐!

내 마음들 중에서 삼장과 같은 ‘자비심’과 만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중생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삶에 고민이 생기고 방향이 흔들릴 때, ‘서쪽’과 ‘삼장의 마음’에 마음이 걸리는 것, 지금 이렇게 잘 살아있는 것, 괴로움을 마주하려 하는 것, 특정할 수 없는 수없는 자비를 받아 길을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나의 괴로움이나 생명이 구제받았고, 받고 있는 중이기에 나도 나 이외의 존재를 괴로움에서 구하려는 마음이 자연히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중생구제와 자기구제는 두 개의 길이 아닌 하나의 길인 것이다.

 

4. 괴로움에 맞서는 ‘서쪽’ 방향을 여는 방법, 질문하기

 

하지만 다시 올라오는 걱정 하나. 내 안의 손오공과 삼장이 멀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손오공과 삼장과 마주칠 수 있을까? 어떤 특별한 순간이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자신이 팍 없어진다. 그러나 손오공이 자비의 마음을 마주치는 순간을 보면 나도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날씨가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승려들의 옷차림은 너무 남루했어요. 그렇게 너무 궁색한 모습을 보자, 손오공은 마음속에 궁금증이 생겨났지요. (중략) ‘내려가서 어찌된 일인지 잘 알아봐야 사부님께 말씀드리기가 좋겠다.’(위의 책, 5권 99-100쪽)

손오공이 많은 사람들을 구출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질문이 생길 때이다. 손오공의 눈이 높은 고개 너머가 아닌 지금 이곳에 닿아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궁금증이 생겨난다. 손오공은 노예 생활을 하는 오백 명의 승려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궁금하니 사연을 듣는다. 듣고 보니, “정과로 돌아가 스님을 보호하면서 오로지 인간 세상의 재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위의 책, 5권 112쪽)고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자 행동하게 된다. 손오공은 자신의 털을 한 움큼 뽑아 승려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킨다. 그리고 불교를 탄압하는 요괴를 잡아 ‘불문에 참된 도’가 있음을 거지국(車遲國) 국왕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나밖에 없는 세상에서는 어떤 목표를 세워도 어떤 공부를 해도 반복적으로 방향을 잃고 괴로워한다. 내 욕망의 패턴 속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모두와 함께 할 때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모든 만물을 만나게 하는 마주침이 귀하다. 질문이 생기는 것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냥 하는 질문, 대충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도 없게 된다.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는 고통이 따른다. 욕망을 멈추고 생각이란 걸해야 하는 고통! 그러나 이 괴로움은 스승이며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마음이다. 괴로움을 ‘주어지는 것’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면 질문은 줄어들고 외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괴로움을 손오공이 사부님과 마주치는 질문으로 만나면 이로운 방향이 열린다. 나와 남을 괴로움에서 구하고, 반복되는 괴로움의 늪에서 자유를 주는 이로운 방향! 이 방향으로 몸을 세우고 있다면 힘 빠질 염려는 고이 접어두어도 좋다. 내가 괴로움에 답할수록 내 힘은 이 길에 흘러 들어갈 것이며, 이 길에서 연결된 힘이 나의 이로움을 위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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