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모태솔로, 조르바에게 사랑을 배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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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1-19 12:41 조회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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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르바의 사랑 철학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는 마음
사랑에 연민의 감정을 가진다고? 의아했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게 사랑과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일단 그의 연인인 오르탕스 부인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부불리나는 그와 사랑을 하며, 결혼을 꿈꾸기 시작한다. 조르바의 사랑은 자신을 가장 자신감 넘치고 사랑받던 시절로 되돌려준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해 준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건 자신을 살아나게 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려왔던 그녀의 소망은 ‘서방을 얻고, 아이를 얻’는 아내이자, 엄마로 사는 삶을 이루는 것이었다.
저 원대한 희망―결혼―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그 오묘하고 수상한 매력을 깡그리 잃어버렸다. 세이렌은 과거를 말끔히 지우고 파샤와 터키 유지들과 제독들에게서 얻어 낸 깃털 장식을 모조리 벗어 버린 것이었다. 부인에겐 진지하고 존중받는 여염집 여인, 착하고 현숙한 아내가 되는 것 이상의 열망은 더 이상 없었다. (…) 부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결혼하고 싶어하는 가련한 여자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 304p)
그녀의 바람이 조금 이해된다. 나도 언젠가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길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이자 인간이 되는 길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일까. 부인의 바람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르탕스는 조르바가 결혼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자, 속이 타서 울부짖는다. “당신은 잔인해요!” 묵묵부답. ‘여보, 결혼식에 쓸 화환은 어쨌지요?’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조르바한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계속 애원한다. 부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조르바는 입을 연다. 쓸 만한 결혼 화환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고, 이름난 디자이너가 만든 최고급 드레스를 준비 중이라고. 그러니 기왕 하는 거 거하게 결혼식을 치르자고. 순 거짓말투성이지만, 부인은 그의 말을 들으며 활짝 웃는다.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준비한 결혼반지를 주며 약혼하자고 한다. 제발 받아주길 바라며,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선택의 기로에 선 조르바. ‘한 떼거리의 악마가 그의 내부에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결혼을 승낙한다. 가볍게 약혼 서약을 하고 나서 여자는 조르바의 다리를 붙잡고 울었다. 조르바는 오르탕스가 너무 가여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헤어지는 길에, 부인이 입을 맞추려 하자 조르바는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엎드릴 시늉을 해’ 보이며 발에라도 키스할 기세였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안 돼! 내가 〈당신의〉 발에다 키스해야지, 암, 해도 내가……하지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잘 자요!”
그녀를 보낸 뒤, 조르바는 두목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다. 조르바의 결혼 승낙은 의외였다. 애원하는 부인을 보니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는 자유로운 영혼 아닌가. 게다가 그가 결혼은 ‘눈 깔이 먼’ 행위이며, ‘개골창에 대가리를 처박고 떨어진’ 것이고, ‘지겨운’ 것이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아직도 여자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 다면서, 오르탕스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뻐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두목에게 ‘제우스 신’의 사랑 이야기(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를 하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사랑에 목마른 인간 여성들을 위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사랑해 주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의 자신의 소명이다. 수많은 이들을 상대하고 나서 지친 제우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어디선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신속하게 내려간다. 마음이 내키지 않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때도. 결국 그는 모든 정을 소진해 ‘먹은 음식을 토하더니 사지가 마비되어’ 생을 마감한다. 조르바가 신나서 지어낸 이야기지만, 궁금했다. 제우스는 왜 자신의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그들을 만족시키려 애쓰는 걸까?
“그 양반 물론 여자 좋아했지요. 그러나 당신네 펜대잡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 양반은 여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겁니다.” (위의 책, 314p)
그가 말하는 ‘그들의 고통’이란 뭘까? ‘욕망과 회한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말한다. 욕망이라. 나는 연애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욕망을 부끄럽고, 더럽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외면하거나 참았다. 알아차리고 보니 이미 습관이 되어있었다. 나라면 오르탕스 부인의 결혼하고픈 욕망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이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게 드러나니까! 그러나 조르바가 연민하는 감정의 본질은 타인의 욕망을 마주하는 것이다. 마주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가 같은 인간이라는 연결감은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 중 한 명이 과부다”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지다
헉, 조르바는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인간을 사랑한단 말인가? 대체 어쩌다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 거지?
두목은 조르바의 말에 자극받고, 과부의 집에 찾아갔다. 둘은 하룻밤을 보냈고, 그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 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과부가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왜? 그녀를 아내로 맞지 못하면 목숨을 끊겠다던 청년, 파블로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바다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청년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다. 부활절에, 그녀를 발견한 마을 주민이 “과부다! 과부야!” 하고 소리친다.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모두 노기를 띠며 교회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다. 죽은 청년의 아버지인 마놀라카스는 단도를 빼어서 들고 있었고, 마브란도니 영감은 교회 문 앞에 서서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팔을 벌려 문을 막았다. 마을 사람들 일부는 환호하거나 얼굴을 가렸고, 일부는 혁대에서 단도를 하나 둘씩 뽑아 들었다. 마브란도니가 “그 여자는 내 거야!”하고 소리쳤다. 과부는 절규하며 그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두목은 마을 사람 중 한 명을 붙잡고 외친다. “자네는 저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자비를 베풀게!” 그 말을 들은 상대. 비웃는다. 죽은 청년의 사촌 마놀라카스가 과부를 향해 단도를 쳐든 일촉즉발의 상황. 조르바가 ‘시퍼렇게’ 화를 내며 나타나 칼을 내려두라고 호령했다. “창피하지도 않나? 사내들이란 것들이 무더기로, 아니 온 마을이 여자 하나를 죽이려고 몰려다니게? 크레타섬 전체를 망신시키려고 그래?” 청년의 아버지 마브란도니가 조르바에게 달려들어 싸움이 났다. 조르바는 잘 싸웠지만, 이곳저곳을 얻어맞고 한 쪽 귀를 물어 뜯겼다. 겨우 그를 땅바닥에 팽개친 조르바는 과부에게 같이 가자고 소리친다. 그러나 마브란도니 영감이 과부를 덮쳐 칼로 일격에 목을 잘라 버렸다…….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 조르바. 두목은 꺽꺽대며 울었다. 그날 밤, 조르바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낸다.
“두목!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불의, 불의, 불의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 말고! 왜 젊은것들은 죽고 늙은 것들은 살아야 하나요? 왜 어린 것들이 죽습니까!” (위의 책, 356p)
조르바는 자신의 세 살 된 아들 디미트리를 잃었던 때를 떠올렸다. 아이 생각만 해도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이 죽는 날까지도!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과부의 죽음을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슬퍼하는 조르바. 공감이 되면서도, 또다시 궁금증이 올라왔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이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걸 봐왔다. 그러면 죽음에 무뎌지거나,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몸을 던져 마을 사람들과 싸웠다. 그것도 혼자서.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계속 힘들어했다. 인부들에게 괜히 소리를 지르거나 욕했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몸을 움직이고, 몸이 원하는 대로 하게끔 내버려둔 적이 있던가?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머릿속 생각은 이미 하고픈 걸 행한 뒤의 먼 미래까지 가 있다. 그러나 내 몸뚱이는 늘 경직되어 있고, 활동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완전히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둘이 하나가 될 방법은 없을까?
산투르와의 합일, 세상과의 합일
응? 머리랑 몸이 따로 노는 게 고민인데, 갑자기 산투르(*조그만 망치나 채로 쳐서 연주하던 침벌롬이나 덜시머의 변형으로 기타 비슷한 악기)가 왜 나오지? 라는 질문이 들 수 있다. 산투르는 앞에서 언급했듯 조르바의 유일한 재산이며, 이 악기는 놀랍게도 첫 등장부터 책의 마지막까지 빠짐없이 등장한다. 조르바의 분신과 다름없다. 조르바에게 산투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밥벌이 메이트다. 먹고 살기 고될 때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곁들인 연주를 한다. 관람료를 받는다. 그날 하루 밥값은 해결 완료다. 그리고 둘, 소울 메이트다. 그가 스무 살 때다. 처음 들은 산투르 소리에 혼이 나갈 만큼 홀딱 반해서, 결혼하려고 ‘꼬불쳐 둔’ 돈을 가지고 산투르를 구했다. 그리고 스승을 찾아가 1년간 배웠다. 산투르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물건과도 ‘교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두목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래서 묻는다. ‘근심 걱정을 잊으려고’ 산투르를 친 거냐고.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이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 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잖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우리는 어찌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 돼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겠어요?” (위의 책, 22p)
산투르와 교감한다는 건 무엇인가. 산투르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먼저 살펴보자. 그는 반짝거리게 닦아놓은 산투르를 보따리에 넣고 다닌다. 꺼낼 땐 섬세하고 주의 깊은 손놀림으로 그를 꺼낸다. 줄 끝에는 놋쇠와 상아와 비단 술 장식을 매달아 놓았다. 조심스럽지만 정열적으로 줄을 고른다. 그리고 둘의 대화. “이리 오너라, 이 도깨비 같은 것아. 말 한마디 없이 벽에 걸려 뭘 했니? 어디 네 노래 좀 듣자!” 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산투르의 소리와 그의 신체가 리듬에 맞춰 함께 간다. 완전한 합일의 경지다. 산투르는 인간처럼 영혼이 있지 않다. 보이는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연주하는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면, 그리고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들었을 땐 같은 소리임에도 각기 다른 해석이 터져 나올 것이다. 비로소 산투르는 생명을 얻는다. 그는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온다. 지나가는 사람, 물이 담긴 컵, 꽃, 포도주. 만물이 이 세상에 창조되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자신과 맞닥뜨리기까지. 이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생명의 원리에 감탄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말이오!” (위의 책, 29p)
녹로를 돌리는데 손가락이 자꾸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았다. 그래서 손도끼를 들어 자기 손가락을 잘라(헉)버렸다. 그에겐 자기 손가락이 도자기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끼어든 ‘장애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조르바와 도자기. 이 둘의 관계 속에선 무엇도 끼어들 수 없다. 현실적으로 그의 사랑은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두목이 말한 것처럼 그만큼 도자기 만드는 걸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이미 조르바의 영혼은 녹로가 되었고, 진흙 덩이가 되었다. 조르바는 모든 삼라만상에 마음을 열고,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산투르보다도 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두목과의 사랑에 비길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대체 어떤 관계지?
사람과 교감하는 신체
두목은 조르바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좋았다. 정반대인 사람끼리 끌린다고 했던가. 둘은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정말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삶을 책과 글쓰기로 꽉꽉 채웠으나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절실한 청년, 읽어본 책이라곤 「뱃사람 신드바드」 한 권뿐이지만, 삶의 모든 풍파와 신비를 몸으로, 가슴으로 뛰어들며 살아온 노인. 둘은 서로의 빈 부분들을 채워준다. 그 방법은 ‘대화’다. 서로 묻고 답한다. 그간의 경험으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생길 때, ‘책에서는 뭐라고 합디까?’하며 묻곤 하는(두목이 대답을 못 해서 ‘책을 태우라’고 한마디 듣지만.) 조르바, 책을 통해 만들어진 가치관을 가지고서 질문, 대답에 의한 반박, 약간의 놀림(^^)을 던지는 두목. 그러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때론 화를 내기도 하며, 사건들 앞에선 슬퍼하거나 절망하기도 했다.
첫 만남, 탄광 사업, 마을 사람들, 여자와의 사랑,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사업의 끝…. 이 모든 사건과 함께 둘은 ‘섞’인다. 두목은 내면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조르바와 ‘춤’을 추는 것이다. 조르바는 기쁘거나 슬픔이 복받쳐 오를 때 춤에다 ‘몸을 맡기곤’ 했다. 같이 추자는 조르바의 제안에 ‘싫다’고 고개를 젓던 두목. 탄광 사업이 쫄딱 망하고 나자, 마치 어깨에 가득 짊어지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양 마음이 가뿐해진다. 그는 벌떡 일어나선 ‘조르바! 춤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외친다. ‘야호! 이리 오쇼!’ 신이 난 조르바는 여러 가지 춤을 가르쳐 주고, 틀린 부분을 고쳐주었다. 두목은 서서히 춤의 리듬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본 조르바는 그를 향해 외친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머리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드리지! 자, 갑시다!” (위의 책, 415p)
조르바는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의 춤은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온몸을 던져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펄쩍 뛰면서,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춤도 실컷 췄으니, 죽어도 더 이상 후회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두목은 처음에는 조르바의 춤사위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함께 춤을 추니, 두목은 조르바의 몸부림이자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기 몸에 새길 수 있었다. 둘은 자갈밭 위에 널브러져 뒹굴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껏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느끼는 건 당연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지만, 아직 내 ‘신체’는 은둔했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지키던 그때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사랑하고픈 감각을 마음 안에 들이기엔 크기가 너무나 컸을 것이고, 그래서 버겁고 낯설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 상태에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바랬던 건 욕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두목에게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아직 그는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조르바가 인간, 산투르 등에 대해 끝까지 파고들었듯이, 두목도 책을 파보고 싶었다. 가슴이 아프지만, 작별의 시간이 왔다. 조르바가 당연히 쿨하게 빠이빠이 하고 떠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두목,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죠?’, ‘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어요…….’라며 절망했다. 비교적 예상외로 덤덤한 건 두목이었다. ‘책벌레’라고 놀렸던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그 친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 문득문득 상념에 빠져있었던 그였는데 말이다. ‘건강하시오, 두목!’ 다음 날 두목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며 길을 떠났다.
몇 년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두목은 책을 정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조르바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내거나, 결혼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책벌레’라 놀렸던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서 ‘죽음’이 삶의 화두로 훅 들어왔다. 그랬는데, 두목의 꿈에 조르바가 나타났다. 벌떡 잠에서 깨어난 두목.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욕망’이 자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욕망을 끄집어내려면 ‘조르바를 써내는 일’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조르바의 죽음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죽으면 그의 몸뚱이는 딱딱하고 차가운 시체가 된다…. 그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 며칠을 안 쓰려고 버텼지만,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했던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결국 그는 종이를 바닥에 펼치고 미친 듯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책, 아니, 조르바를 정복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몇 주일 만에 조르바의 연대기가 완성되었다. 마지막 날 나는 첫날처럼 테라스에 앉아 늦은 오후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탈고한 원고가 놓여 있었다. 짐 한 덩어리를 내려놓은 것처럼 느긋했다. 갓 나온 아기를 안은 여자 같은 기분이었다. (위의 책, 441쪽)
그리고 두목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조르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두목을 생각했다고. 정표로 ‘산투르’를 남긴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그들의 사랑엔 대화와 춤과 글이 담겨있었다. 내가 오로지 원하는 건, 연애를 하는 것뿐이었다. 연애 감정에 눈 뜬 건 좋았으나, 연애를 안 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끌려 다녔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연애하고 싶다는 마음을 붙드느라, 정작 타인과 교감도 하지 못했으니까. 조르바가 나에게 알려준 사랑은 뭘까? 만물과 합일할 것,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것, 타인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 결국 사랑의 모든 시작은 누군가와 ‘교감’하는 것에서부터라는 것. 두목은 친구에게 ‘책벌레’라는 말을 듣고 행동하는 삶을 살겠다는 욕망의 씨앗을 키워나갔다. 그러니 나도 혼자였던 신체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교감하는 신체’로 활짝 열리는 삶을 살겠다는 욕망의 씨앗을 키워보려고 한다.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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