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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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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2-09 10:57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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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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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아 (토요 감이당 주역스쿨)

우리 집 가정경제를 책임져왔던 남편이 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자꾸 자식들에게 물질적인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퇴직 후, 알뜰하게 살아갈 다짐을 해도 부족할 마당에 독립해서 잘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인데도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고 싶은 욕망이 올라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도 사주고 싶고, 차도 바꿔주고 싶고, 용돈도 넉넉히 주고 싶다. 그래서 남편이 퇴직 이후에도 오래도록 경제적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 챈 남편은 나를 경계하며 가끔 째려보기도 하면서 주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나는 절대 나를 희생시켜 자식들에게 물질을 퍼주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다짐을 흔들고 있다. 이 마음이 부모로서의 본능인지 아니면, 내 인정 욕망의 다른 얼굴인지 나조차도 분간이 잘 가질 않는다.

큰언니 부부는 나이 70이 넘었는데도 건물 청소 일을 하며 아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대기업을 정년퇴임한 형부의 연금과 상가수입도 받고 있는 언니는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며느리에게 차도 사주고 생활비 카드도 줬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부의금을 너무 적게 해서 나는 남편에게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는 것만 같았다. 서운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리고 그 인색함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자식들과 함께하는 해외 여행경비를 대고,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는 게 아니라 주면서 살겠노라며 독을 품은 듯 돈을 버는 친구는 남은 인생의 목표가 딱 그것인 것 같다. “아들이 왔는데 기름 값을 줬더니 좋아해” “아들딸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경비를 내가 댔더니 또 가자고 하네” 하면서 자랑을 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자식들에게서만 찾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쨌든 친구랍시고 만성피로에 찌들어있는 모습이라도 한번 볼라치면 잠깐의 시간을 잡기도 너무 어렵다. 시간 내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에너지나 애정은 모두 소진된 듯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나의 손절 대상이 되었다.

큰언니의 자식에 대한 지원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언제쯤 자식에게 벗어나 여유로운 노년의 시간을 가져볼지 참 안타깝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고 사는 친구는 얼마쯤의 만족과 뿌듯함도 있긴 할 것 같다. 그러나 돈을 버느라 힘듦이 삶의 고단함으로 전해져 나까지 피로하게 한다. 각자의 살아가는 스타일이지만, 자식에게만 물질을 쏟느라 본인들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태도가 ‘집착’이라고 여겨졌고 주변사람이 떠나는 재물을 모으고 있으니 정말 어리석게 보였다. 자식에게 물질이나 재산을 물려줘야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을 때, 주변에는 한없이 인색해지고, 친구가 떠날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지켜본 셈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와 지인들이 자식들에게 증여와 상속을 하고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욕망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충분히 잘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 아이들만 지원을 못 받아 힘든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자연스레 작동하였다. 그리고 이 욕망은 이런 내 마음이 사랑이든, 부모로서의 책임감이든, 인정욕망이든 상관이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있어서였는지 대유(大有)괘의 구이효,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대차이재 유유왕 무구, 큰 차에 싣고서 가야 할 일이 있다. 허물이 없다)를 읽는데 목에 뭔가 걸린 듯했다. “나는 지금 내 수레에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려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돌아와서이다. 그 질문을 지금의 상황으로 가져와 보니 내 인생의 수레에 물질만을 싣고 자식들을 향해 가고자 하는 소인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어쩌면 혐오했을 수도 있는 큰언니나 친구의 모습, 딱 그대로였다. 주역에서 대표적인 ‘소인’의 정의는 눈앞의 욕망을 따르는 자가 아니던가!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명분이나 대의도 없이 그저 ‘자식들에게 다 해주리라’하는 욕망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또, 가진 걸 나누는데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늘리고 쌓아서 전해주려는 마음, 큰 언니나 친구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지금이라도 정리해보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며 속 태우는 번뇌와 괴로움 속에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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象曰 ‘大車以載’, 積中不敗也.
상왈, ‘큰 차에 싣고서’는 속에 누적하여 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이효는 육오효에게 실어다 주는 성실함과 믿음직함을 속에 누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함을 유지하고 가득차서 물(物) 들이 그를 상하게 할 수가 없다(『주역내전 2』, 왕부지 지음, 김진근 옮김, 학고방, p.404)

‘대유(大有)’는 많고 큰 것을 소유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대(大)는 이 괘의 양효들을 말한다. 대유 괘에서는 존귀한 지위에 있는 육오효가 다섯 양효들과 응하고 있는데 하나라도 좇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 올바름은 견고하지 못하다(『주역내전 2』, 왕부지 지음, 김진근 옮김, 학고방,  p.394). 즉, 다섯 양효가 한마음 한뜻으로 육오효에게만 능수능란한 자신들의 성취와 능력 등을 바친다는 의미이다. 그중에서 구이효는 굳셈의 덕을 지니고서 중앙의 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다른 양들이 그에게 의지하며 기탁하고 있다. 위로는 육오효에 응하며 자신을 의지하며 귀의하는 이들 모두를 제 소유로 차지하지 않고, 자신의 수레에 실어 육오효에게 간다. 즉,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사사로운 욕심을 내어 자기 소유로 고집하지 않고 육오효에게 순종하며 바치는 것이 바로 구이효의 군자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함과 믿음직함이라는 덕(德)이 누적되어있어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고 상전에서 말하고 있다. 구이효는 눈앞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만약, 구이효가 사익을 취해 소인이 되었다면 대유괘의 큰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마터면 나도 그럴 뻔 했다.

갖고 싶어도 갖지 않고, 주고 싶어도 주지 않는 것! 지금의 내 상황에선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욕망을 참아 내는 것! 이것이 내가 실천해야 하는 일이고 쌓아 나가야 할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된 부분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감당할 큰 그릇이 필요한 법이다. 작은 그릇에 억지로 많은 것을 담으려 한다면 패하거나 부서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로서 자식에게 남기는 유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노후까지 소박하게 살다가 떠날 때, 혹시 남는 재물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상속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뭘 더 해줄까 어떻게 자식들의 결핍을 채워줄까 고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내 인생의 수레에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같은 재물이라도 그 재물이나 물질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가 내 곁에서 떠나가지 않고 붙어 모이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운용할 성실함과 믿음이라는 덕,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는가 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금은 다 큰 자식들이 기억하길 바라는 과거의 시간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만큼 부모로서 부끄럽고 미숙했던 시간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내 부족함을 물질로 위로하려 했던 이 어리석음이 정말 부끄럽다. 물질을 실어 나르며 자식들의 물질적 결핍을 채워주려 하기보다 중년의 시기와 노년에 공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진정한 ‘대유’이며 가장 큰 ‘유산’이 됨을 화천대유(火天大有)괘를 통해 배운다. 내가 배운 것을 다 전해줄 순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힘을 다해 공부의 길로 나서고 있음이 삶의 태도로 비춰 지길 바란다. 이 모습이야말로 삶을 넓히고 사사로움을 따르지 않는 태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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