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27살이 되는 민석(가명)씨, 이 청년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아침 늦게 일어나 TV로 미국 프로야구를 보고 대충 밥을 먹는다. 오후에는 혼자 피시방을 다녀오고, 저녁 식사 후엔 컴퓨터 게임과 핸드폰을 보며 새벽까지 침대에 붙어있다. 최근 발표된 인터넷 기사, “보건복지부가 고립-은둔, 가족 돌봄 위기 청년의 자립과 사회진출을 지원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해당 청년(13세~34세)은 현재 6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파이낸셜뉴스, 2025.10.13) 64만 명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그중 민석 씨는 ‘느린 학습자’라는 다소 낯선 꼬리표를 달고 있다.
‘경계선 지능인’의 다른 이름인 느린 학습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3~14%에 이른다(약 700만 명, 23년 국회 입법처 통계). 이들은 지능지수(IQ) 70~85 사이로 지적장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어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고통이 상당하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이나 법제가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경계선 지능인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해서 겉으로 보기에 별 어려움이 없어 보여 더 큰 상처를 받는 사례가 많다. 민석 씨 역시 돈가스집 아르바이트를 어렵게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솜씨가 어설픈 탓에 매니저에게 많은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상처와 공포심을 안은 채 일주일 만에 쫓겨났다. 그 후 한없는 무력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홀로 방구석에 파묻힌 지 벌써 몇 년째다.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끝도 없는 차디찬 겨울에 머무르고 있다.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은 애당초 포기한 지 오래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이 전무하고, 느리다는 이유로 왕따나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성인이 된 이들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자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들의 시선과 걸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요즈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동호회가 많다. 그러나 민석 씨는 그 어떤 모임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마냥 외롭고 친구가 있는 또래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일단 집에서 나와 갈 곳이 있어야 하고, 또 만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또래들과 대화하고, 놀이와 교육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하다.
2022년 6월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했다. 민석 씨는 올해 9월부터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드게임을 활용한 금융-경제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방문을 나서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덕분에 선생님과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잠시나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민석 씨는 운이 좋은 경우다. 전국적으로 이런 센터와 프로그램의 수가 너무 적고, 지방에는 아직 이들을 위한 공간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