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강감찬 청년캠프]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욕망 사용법 : 간디의 길, 조르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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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5-08 10:39 조회9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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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가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고?
삶은 욕망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행위의 저편엔 그걸 하고자 하는 바람, 욕망이 존재한다. 야심한 시각, 마라탕을 먹고 싶은 욕망부터 물욕, 수면욕, 명예욕, 성욕까지. 이런 자잘한 욕망을 가지고 내 신체는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욕망을 터부시하기에 바빴다. 이 모든 욕망 중에서도 특히 성욕은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는 불교와 인연이 깊다. 이모는 일찌감치 스님이 되셨고, 부모님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재가자로서 수행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나도 자연스레 감이당에 오기 전까지 쭉, 20년 동안 절 공동체 안에서 살았다. 어릴 적부터 주위 사람들은 다 스님에 재가자 도반님들이지, 초등학생 때부터 홈스쿨링을 해서 늘 어른들과 함께했지…. 환경이 이러니 호기심도 덜하긴 했다. 게다가 여색, 남색의 재앙은 독사보다 심하니 항상 반드시 멀리 여의라는 경구를 매일 외우고 살지 않았겠나. 때로 호기심이 생겨도 아닌 척 감추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친구는 연애하고, 남자친구와 스킨십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런 식의 접근이 맞는 걸까? 부처님이 욕망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딱 하나다. 그래야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욕하면 할수록 우울감만 커졌지 거기서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욕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스려지지 않았다. 더 자고 싶었고, 맛있는 걸 원했고, 놀고 싶었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그냥 무턱대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없애고, 누르려고 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됐다. 내 생각과 행동은 당연히 부처님의 가르침, 내가 외웠던 경과 어긋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불일치를 스트레스와 자책으로 받아 안았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서 사는 이상 나는 나만의 삶의 기준을 가져야 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게 대학이든, 밥벌이든, 유학이든, 연애에 관한 것이든 욕망이 있어야 활동할 것 아닌가. 삶을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부처님도 세상일을 소홀히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스님이 아니고서는 연애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도, 내 친구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단히 곡해한 채로, 마치 군대 규칙같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신체를 두고 나는 왜 그렇게 자책했을까. 나는 아마 수행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간디를 처음 만났을 때 익숙했다. 브라마차르야(금욕)를 선언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수행의 방식은 내게 낯선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공부해 가면서 깨달았다. 간디의 금욕은 나의 터부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그 안에 부대낌이 아닌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간디에 한참 감동받고 있던 와중에 씨드북 세미나에서 조르바를 만나게 됐다. 조르바는 한평생 사랑을 나눈 여자를 셀 수도 없는 지경의, 간디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은데 또 엄청 자유로워 보였다. 이렇게까지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산다고?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자유의 화신일 수 있다고? 간디 공부에 주력하던 중 만났던 조르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다 곰숲 글쓰기 학교에서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됐다. 이들 모두 욕망 때문에 슬픔을 겪었고, 욕망 덕분에 자유로워졌다. 간디와 조르바 모두 에로스를 빼놓고 두 사람을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에로스의 화신이다. 간디는 욕망을 매 순간 절제했고, 조르바는 욕망에 완벽히 충실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에로스-사용법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욕망을 억누르지도, 욕망에 휩쓸리지도 않고 욕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또 같다. 그게 바로 자유 아닌가. 눈이 번쩍 뜨였다. 욕망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에로스가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니, 흥미롭다. 이 대목을 잘 살피면 욕망을 다루는 엄청난 기술 하나를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욕망과 자유! 결코 함께 떠올릴 수 없었던 이질적인 두 단어가 통합되어 간디와 조르바의 삶에 온전히 녹아 있었다. 다르지만 같은, 자유로운 두 갈래 길. 간디와 조르바의 에로스-욕망 사용법이 궁금하다.

강렬한 욕망과의 대면
작년 여름에 『간디 자서전』을 처음 읽고 간디 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다. 간디에게는 어떤 장막이 없다. 나는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감췄을 것 같은 사실을 간디는 낱낱이 까발리고 공표한다. 이 솔직함이 정말 멋있었다. 간디의 솔직함은 아주 면밀해서 설령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으로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 또한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한다. 가장 내밀한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성적 욕망의 문제에서도 물론 예외는 없다.
간디는 7세에 약혼하고 13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그 당시 인도의 조혼 관습을 따라서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막 성에 눈을 뜰 시기에 결혼하게 된 것이다. 아내 카스투르바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 성욕이 불타올랐다. “나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나는 그를 생각했고 밤이 오면 우리는 또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항상 내게 붙어 있었다. 떨어져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간디, 『간디 자서전』, 함석헌 옮김, 한길사, 70쪽)라고 간디는 고백한다. 그리고 3년 뒤, 간디는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될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시기 간디의 아버지는 치루 때문에 꼼짝도 못 하는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효심이 깊었던 간디는 아버지를 지극하게 간호했다. 상처를 돌보고, 약을 챙기고, 밤마다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간디는 기쁘게 그 일을 했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게 첫째로 중요한 일이었고, 그 임무가 끝난 뒤에야 학교에 가 있거나 산책을 다녀오거나 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성욕은 망동했다. 카스투르바이가 만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간디는 매일 밤 아내를 찾았다. “밤마다 손은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기에 바쁜 동안에도 내 마음은 침실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그때는 종교적으로 보나 의학적으로 보나, 상식에 비추어보나 성교는 할 수 없는 때였다. 나는 항상 그 임무를 어서 마치고 나오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는 곧장 침실로 갔었다”(위의 책, 89쪽)라고 자서전에 밝히고 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위독해지셨다. 고약도 효과가 없었고, 외과수술도 무산되어 완전히 포기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어느 날 밤 간디가 여느 때처럼 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있었는데 삼촌이 오셔서 이제 그쯤 하고 건너가 쉬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간디는 신이 나서 침실로 갔다. 그리고 그날도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웠다. 5분이나 지났을까? 하인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아버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간디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눈앞이 캄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토록 공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슬픔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사무쳤을까. 아버지와의 이별과 더불어 첫 아이도 태어난 지 3일 만에 죽었다. 16세 소년이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간디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자신의 욕망과 강렬하게 마주하게 된다. 엄청난 슬픔이나 후회가 몰아닥치면 사람은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망각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이전의 충격은 옅어지고, 욕망은 계속해서 일어나니 다시 욕망을 따라서 살게 되는 것이다. 나를 봐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때의 슬픔이 많이 옅어져 있다. 그때 죽음을 생각하며 다졌던 수행의 각오도 많이 느슨해져 있다.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욕망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실제로 간디도 영국 유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한 여성에게 끌렸던 적이 있다. 어떤 식당에 갔을 적에 메뉴 이름이 모두 프랑스어로 쓰여 있어 쩔쩔매던 간디를 한 노부인이 도와주었다. 이 일을 인연으로 간디와 노부인은 친구가 되었는데, 그녀는 일요일마다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간디를 집으로 초대했다. 노부인의 소개로 간디는 젊은 여자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게 된다. 간디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관계를 이어갔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자 노부인은 둘의 약혼을 계획하게 되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든 간디가 편지로 사실을 털어놓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이 해프닝이 끝났다. 그 뒤로 간디가 다시 총각 행세를 하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노부인의 집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수줍음 많은 성격의 간디가 편히 말을 터놓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사교를 가르쳐 주었다. 간디는 곧 일요일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간디처럼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다. 아내와 아들은 인도에 있으니 거리낄 것이 무엇인가. 욕망 따라 살고 거짓으로 무마하려 든다. 하지만 간디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멈췄다. 간디는 그날을 절대 잊지 않았던 거다. 자신도 수치라고 표현했듯, 부끄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늘 자신을 살폈던 거다. 그리고 자서전 집필을 시작한 56세에 이렇듯 세세히 모든 일들을 밝혀 놓았다.
간디는 자책하지 않는다.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일을 곱씹으면서 망가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만난 여성에게 호감을 가졌던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부리나케 침실로 향했을까, 지금 나는 왜 인도에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걸 숨기고 이 친구를 대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이런 간디를 보면서 자책은 진짜 참회가 아니라는 걸 배웠다. 후회와 슬픔을 거름 삼아 절대 잊지 않고 욕망이 요동치는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진짜 참회이고 수행이다.

백 살이 되어도 벗어나지 못할 저주!
이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음식, 술, 여자와 춤─가 그의 건강하고 왕성한 몸에서 사라지거나 둔화되는 날이 없었던”(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81쪽) 조르바를 만나보자. 조르바는 산투르라는 악기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가는 사내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춤도 사랑한다.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 못 할 감정을 느낄 때 조르바의 마음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건 춤뿐이다. 식욕도 얼마나 왕성한지 모른다. 포도주와 음식을 채워 넣기 전까지 그의 신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음식에 초집중해 배를 채운 뒤에야 일을 하고, 춤도 추고, 산투르도 연주하고, 섹스도 한다. 욕망 따라 막 사는 것같이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그는 일찌감치 욕망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
소년 시절, 조르바는 한때 버찌에 꽂혔다. 조금 사서 먹으면 또 생각나고, 더 먹고 싶어지고, 밤이고 낮이고 버찌 생각밖에 안 들었다. 소년은 문득 자존심이 상했다. 이따위 조그만 열매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쥐락펴락하는가,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얘가 나를 데리고 노네?’ 조르바는 한밤중에 아버지 주머니를 뒤져서 은화 한 닢을 찾아내 다음 날 버찌를 왕창 사서 먹었다. 배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서 몽땅 토할 때까지. 그 뒤로 다시는 버찌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술, 담배도 마찬가지다. 조르바는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내가 끊고 싶어지면 언제든 끊어 버린다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어떤 감정에도, 조국에도, 어떤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목젖까지 넣고 토하기’ 기술을 터득한 조르바도 70대에는 끊으려나, 80대에는 끊을 수 있으려나 장담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었으니, 바로 에로스이다. 결혼은 해보았냐, 몇 번이나 했었냐 하는 질문에 조르바는 답한다. 정당하게는 한 번, 반쯤 정당하게는 두 번, 부정하게는 천 번, 2천 번, 3천 번? 여하튼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했다고. 참… 연애 경험이 제로인 내게는 눈부시다 못해 가혹할 정도의 스펙이다.^^ 다른 어떤 것도 조르바를 흔들지 못하지만 “여자가 흘린 한 방울 눈물은 그를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할 수 있었다.” (위의 책, 305쪽)
조르바가 여자한테 이렇게 약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소년 시절 조르바의 집 맞은편에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살았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마을의 청년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취기가 오르면 용기를 얻어 소녀의 집 밑으로 우르르 몰려가 기타를 치고 세레나데를 불렀다. 이때 조르바는 여든 살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조르바가 살펴보니 할머니가 토요일마다 자기 매트리스를 창가에 붙이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손질하는 게 아닌가. 누가 가까이 오면 할머니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조는 척을 했다. 할머니는 세레나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 이야기를 하며 조르바는 슬퍼져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그때는 그 모습이 우스워 보이기만 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계집애 꽁무니만 쫓아다닌다고 조르바를 나무랐는데, 잔소리를 듣기 싫었던 조르바는 곧이곧대로 쏘아붙이고 말았다. 할머니는 왜 토요일마다 호두나무 잎사귀를 입술에다 문지르고, 머리를 매만지냐고. 우리의 세레나데를 기다리는 거 아니냐고! 우리는 할머니가 아니라 크리스탈로를 따라다니는 거라고 소리쳤다. 할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르바는 그날 처음으로 여자라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고 고백한다. 노소불문, 여자는 사랑을 원한다.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다….
청년 조르바는 옳고 그름을 따졌다. 전쟁에 참여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은 조르바는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 사람이라면 불쌍하게 여겼다.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하단다. 악하기만 한 놈도, 착하기만 한 놈도 없다. 이놈 안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이놈도 언젠가는 죽어 한 줌 먼지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면 불쌍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조르바에게 여자는 이보다 더한 연민의 영역에 있는 존재다. 생각하면 “눈이 빠지게 울고 싶어지는”(위의 책, 325쪽), 그런 존재들이다. 조르바의 할머니는 그 일이 있고부터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두 달 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조르바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알렉시스 조르바! 내가 받은 고통을 다 물려받기를! 조르바는 말한다. 자신이 백 살을 산대도 할머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백 살이 되어도 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거라고.
조르바에게 에로스란 무엇일까? 조르바의 생존 기술(?)은 바로 과부다. 어느 곳에 가든 과부 한 명은 꼭 있는데 조르바는 그 집에서 머문다. 외모고 나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일단 보면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다.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 여자는 조르바에게 매료된다.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말도 재밌게 하니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술기운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잠을 잔다. 수많은 여자와 이런 관계를 맺지만 조르바는 여자에 미친 자도, 섹스 중독자도 아니다. 이게 바로 조르바의 특이점인데,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조르바를 평가하려는 사람들은 다 여기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과부집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도 인연이 다하면 또 떠난다. 여자가 미남 군인과 사랑에 빠져 조르바를 버리고 달아나든, 조르바가 가야 할 때라고 느껴서든. 잘은 몰라도 조르바의 에로스에는 육욕 이상의 뭔가가 있다. 조르바는 여자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질투도 하지 않는다. 조르바의 에로스에선 소유욕과 질투심을 찾을 수 없다. 나는 그게 연민심 아닐까 생각한다. 신기한 에로스다. 에로스 밑바탕에 깔린 연민의 마음이라니. 온갖 인간에 대한 연민, 특히 여든 살이 되어도 사랑을 갈망하는 연약한 존재, 여자에 대한 이런 뭉클한 연민이라니. 조르바는 아마 할머니의 저주를 풀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백 살을 산대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백 살을 산대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간디의 브라마차르야
이제 구체적인 욕망 사용법을 알아볼 차례다. 간디의 진리 실험 중에 유명한 것이 ‘브라마차르야’인데 이는 범행(梵行), 즉 ‘맑고 깨끗한 행실’이란 뜻이다. “넓게는 모든 금욕을 뜻하나, 특히 엄격히 성행위를 금하는 정결주의, 동정 생활을 의미한다.”(간디, 『간디 자서전』, 함석헌 옮김, 한길사, 291쪽 주석 중에서) 간디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브라마차르야를 맹세했다. 16세의 경험을 거름 삼아 어떻게 욕망을 다루었는지, 그 맹세의 과정을 따라가 보자.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간디는 인도에서 변호사로 정착하지 못하고 법률문서 작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운명처럼 남아프리카로 향한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일을 연달아 겪게 된다. 기차에서 쫓겨나고, 마차에서 폭행당하고, 멀쩡히 길을 걸어가다가 경찰관한테 발길질당하기도 한다. 오로지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간디가 겪은 정도는 남아프리카의 수많은 유색인 계약노동자가 받는 핍박보다는 그나마 덜한 편이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부당함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간디의 마음에 담겼다. 간디는 인도로 돌아갈 생각을 아예 접고 이후 20여 년 동안 남아프리카에 머무르며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와 동시에 욕망과의 한판 승부도 계속되고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소유욕과 질투심 때문에 아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심지어 아내가 외출할 때도 자신의 허락을 받고 나가기를 원했다. 이런 관계는 유학 생활을 끝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지속됐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 아내를 힘들게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아내에게 읽고 쓰는 것도 가르쳐 주고 다방면으로 그녀의 선생 역할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간디의 성욕이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간디는 그 상태로 멈춰 있지 않았다. 영국에 가서 채식을 만나 음식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성욕은 미각의 쾌락을 따르려는 생각과 함께 작동함을 깨닫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본다. 음식 실험은 곧 입맛을 통제하는 과정이었고, 입맛에 좌우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되는 만큼 식욕에서도, 성욕에서도 약간은 자유로워졌다. 그러면서 아내와의 관계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많은 시간을 쏟아 봐주지는 못해도 아내의 선생 역할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해감에 따라, “육신의 욕망이 차차 사라짐에 따라 가정생활은 평화롭고 애정에 차 행복해졌으며,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갔다.”(위의 책, 378쪽)
그렇다고 해서 젊었을 적 간디가 강압적이고 의심만 하는 남편이었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간디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카스투르바이 또한 그랬다. 간디의 아내 카스투르바이는 아주 당찬 여성이었다. 10대 시절 간디가 카스투르바이의 거동을 살피고, 어디 갈 때 허락받고 가라고 해도 그녀는 “언제든지, 어디든지 제가 가고 싶기만 하면 가고야 말았다.”(위의 책, 69쪽) 간디가 구속하려 하면 할수록 그녀도 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또 간디가 아내에게 글을 가르쳐주지 못한 이유도 물론 간디의 성욕 탓도 있었지만 일단 카스투르바이 자신이 배우고 싶은 생각이 딱히 없었다는 데 있다. 이건 단지 간디의 욕심이었고, 아쉬움이었다. 해서 “만일 그에 대한 내 사랑이 절대로 정욕에 물든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오늘날 학식 있는 숙녀가 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그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능히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위의 책, 71쪽)라고 간디가 회상하는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당찬 소녀 카스투르바이는 진즉에 제 갈 길을 가지 않았을까.
여하튼 간디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나와 내 아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의 아내에 대한 성실은 내 아내를 정욕의 도구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되새긴다. “내가 정욕의 종인 한, 나의 성실은 아무 가치가 없다.”(위의 책, 292쪽) 이 생각이 정립된 이후에도 간디는 두 번이나 실패한다. 성욕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해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이 아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간디에게 성욕의 제어는 단지 성욕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가 가면 갈수록 공공을 위한 봉사는 이제 간디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봉사하는 데 있어 성욕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성욕의 만족은 자녀의 출생과 양육을 동반한다. 이미 4남까지 태어났던 상황에서 간디는 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브라마차르야를 지키지 않고서 가정생활과 공공 봉사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게 간디가 내린 결론이었다. 간디의 브라마차르야 맹세는 봉사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라면 30대에 아내와의 잠자리를 거부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남아프리카에서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간디의 성적 욕망의 에너지는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변호사 일, 공동체 운영, 정치활동, 인권운동, 간호 등을 한 몸으로 다 해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을 보내면서 성욕이라는 강한 에너지가 다른 자리에 쓰이게 된 것이다. 이내 간디는 카스투르바이에게 동의를 구한 뒤 브라마차르야를 선언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 브라마차르야, 성욕을 제어하겠다는 맹세는 감성을 억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욕에 휩싸여 쓰라린 경험을 한 뒤로 간디에게 성욕은 삶의 큰 화두였을 것이다. 욕망의 크기가 클수록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여 음식 실험을 이어가면서, 봉사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는 욕망의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만약 간디가 홀로 망동하는 성욕을 제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브라마차르야 맹세를 지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봉사의 장 한가운데에 자신을 던진 순간부터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매 순간의 극기와 꾸준한 실험은 활동의 자리에서,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빛을 발했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욕망의 에너지를 다르게 쓸 수 있는 곳에 나를 던져 놓는 것까지가 브라마차르야다. 그리고 둘은 늘 함께 가야 한다. 금욕은 고삐다. 고삐의 역할은 방향을 잡는 것. 강한 성욕이 괴로움을 낳는다면 날뛰는 말에 고삐를 채우듯 다스려야 한다. 그다음엔 다른 곳을 보면서 마음껏 달리면 된다. 새로운 방향으로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금욕은 억압으로 다가오는 대신 기쁨이 된다. “최종적인 맹세를 할 생각에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 맹세한다고 생각하니 일종의 희열이 느껴졌다. 상상은 날개를 펼쳐 끝없는 봉사의 전망을 열어놓았다”(위의 책, 421쪽)라고 고백한 간디처럼.

조르바의 구속되지 않는 신체
어느 날 조르바는 두목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인전>에 실린 일화를 듣게 됐다. 어떤 금욕주의자가 여자를 보고 성욕이 거세게 올라와 도저히 견딜 수 없자 도끼로 성기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조르바는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참 병 신 같은 친구도 다 있네! 그걸 자르다니! 그런 병 신은 지옥에나 가야지! 그건 장애물이 아니에요! 그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걸 왜 모르셔? 병 신은 천국에 못 들어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9쪽)
병 신은 천국에 못 들어가요! 이 말이 어쩜 그렇게 통쾌하던지. 이 대목에서 단순히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말, 행동의 일치가 진정한 의미의 브라마차르야라는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그걸’ 잘라 성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었어도 여자를 보고 불같이 일어나는 성욕이 그대로라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태어날 때 몸에 달고 나온 것들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은 자만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그래서 구속되지 않는 신체다. 삶이 작동하는 토대인 신체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신체도 욕망도 다 끌어안은 동시에 자유로운 사람만이 천국에 간다. 그래서 조르바가 답답해하며 외치는 거 아니겠나.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구속되지 않는 신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조르바는 그 방법으로 현존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게 『그리스인 조르바』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조르바는 시시때때로 이를 강조한다. 그는 어정쩡한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욕망을 대할 때도 그렇다. 배가 고플 때는 그 자신이 닭고기와 계피 뿌린 육반이 되고, 갈탄광에서 일을 할 때는 갈탄광이 된다. 여자와 함께 있을 때는 여자를, 산투르를 연주할 때는 산투르를, 술을 마실 때는 술을 “살아 버린다”. 순간마다 마주하는 것을 살아 버리면 신체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따로 놀지 않는다.
책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 조르바와 두목이 크레타섬에 들어가 만난 여관집 주인, 오르탕스 부인이다.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 사이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사랑을 나눴고, 어쩌다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가, 결국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막을 내린다.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조르바지만 오르탕스 부인의 염원으로 해변에서 반지를 나눠 끼고 약혼까지 한다. 그러다 부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날 조르바는 아직 죽지도 않은 부인 옆에서 곡을 하려는 두 노파를 쫓아냈다. 쓸 만한 것들은 다 쓸어 담으며 부인의 호텔을 완전히 거덜 내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마당에 있는 닭을 잡아 솥에다 삶고 있는 광기 속에서 조르바는 꿋꿋이 오르탕스 부인 곁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여기 있으니 겁내지 말라며,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부인을 안심시켰다. 그녀는 조르바를 끌어안고 죽었다.
울음을 삼키며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르바는 금방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하루는 두목이 마음이 싱숭생숭해 오르탕스 부인의 호텔을 찾았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부인을 잘도 잊어버리셨다는 두목의 질타에 조르바는 대꾸한다. 자신은 고통스러워할 때는 고통으로 심장이 뜯겨 나가는 듯하다고.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조르바에게 모든 건 아득한 과거에 불과하다. 그에게 어제와 내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만이 조르바의 눈앞에 있다. 그래서 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답한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일, 온통으로 잘해 보게 조르바.
그는 자신한다. 자신만큼 오르탕스 부인을 기쁘게 해준 남자는 없다고. 부인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 훈장, 마누라를 생각하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조르바는 그 순간에 오르탕스 부인과 함께 있었다. 부인도 그걸 알고 있었다고 조르바는 말한다. “쪼그랑 망태기” 같은 조르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구속되지 않는, 현존하는 신체의 에로스! 조르바의 에로스가 자유와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욕망 가운데서 자유롭기
글을 쓰면서 계속 질문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무엇인지. 나는 뭐에 걸려서 자책하고, 힘들어했는지. 뭐에 걸려서 욕망을 질문하게 되었는지. 앞의 ‘기’를 쓸 때만 해도 전혀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아 했다. 간디처럼 세밀하게 욕망을 마주할 용기도, 조르바처럼 목젖까지 퍼 넣어 욕망을 정복해버릴 생각도 없었다. 욕망에서 비롯되는 망상 번뇌, 온갖 부대낌이 불편하고 귀찮기만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번다해질 일은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으려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했다. 이런데 연애가 가능할 리가. 나한테는 귀찮은 일 안 만들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모두 중년, 혹은 노년이었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난 지혜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에너지가 소모되기는커녕 배우는 게 산더미니까. 그래서 사제 관계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배우고 존경하면 그뿐, 충만함은 크고 갈등은 적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이 안정감이 나를 가두는 틀이 될 수도 있겠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욕망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면 이런 태도부터 버려야겠다. 욕망이 잔잔한 상태를 욕망할 것이 아니라 욕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말이다. 무턱대고 욕망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제는 내가 가졌던 일종의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하겠다는 거다. 욕망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과 함께하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하는 건 웃긴 일이다. 내 속에 어떤 욕망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겠다는 건가.
사실 너무 힘이 세서 나를 괴롭게 하는 욕망이라든가, 나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욕망, 나를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던져 버리는 욕망 같은 건 아직 겪어보지도 못했다. 경험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자책이나 하는 패턴을 자각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게 이번 글쓰기의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또한 어릴 때 들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이상 곡해하지 않게 되어 감사하다. 나는 여태껏 진짜 수행이 뭔지 몰랐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선방에서의 수행에 집착하고 있었다. 선방에서의 선정이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도 똑같이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시장통에서의 공부가 두렵지 않아졌다.
에로스라는 강렬한 욕망을 두고 간디는 브라마차르야로, 조르바는 현존으로 길을 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욕망이 가득한 내 몸이 수행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조르바 식으로 표현하자면 병 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또 말한다. 욕망을 꺼리는 마음과 욕망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이곳저곳에 구속되고 말 것이라고. 아마 앞으로 에로스를 포함하여(희망사항…) 더 많은 일을 겪게 될 거다. 이때 눈 가리고 외면하면 절대 욕망을 다스리거나 정복할 수 없다. 세밀한 관찰, 끝없는 실험, 봉사, 연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간디와 조르바에게서 욕망을 다루는 굉장한 노하우를 배웠다. 이렇게 욕망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자유의 영역이 넓어진다. 명심하자. 날뛰는 말이 무섭다고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면 말을 타고 대지를 누비는 자유로움은 끝내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욕망이 오면 기꺼이 겪자! 왼쪽 어깨에는 조르바 스승님을, 오른쪽 어깨에는 간디 스승님을 모시고.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욕망 가운데서 자유로워야 진짜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스완슨님의 댓글
스완슨 작성일
멋진 글 정독하고 갑니다. 욕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