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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장 에세이] 듣기, 충만한 말하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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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6-04 10:52 조회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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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충만한 말하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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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윤 희 (곰숙씨의 글쓰기공장)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도 곧잘 대화하고 생각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하고 돌아설 때 종종 헛헛한 마음이 든다. 말이 많은 탓인가 싶어 말수를 줄여 보려 해도 어느새 수다스러운 본성으로 돌아간다. 대화 끝에 오는 공허함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말하기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 싶어 『숫타니파타』 에서 말과 관련된 경을 찾아보았다. 붓다의 제자 방기싸는 ‘훌륭하게 설해진 것’에 대한 스승의 말씀을 듣고 아래의 시상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말, 사랑스런 말만을 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화를 가져오지 않고,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합니다.(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잘 설해진 말씀의 경」,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쪽)

뜻밖이었다. 아첨을 하라는 의미는 아닐 텐데 그렇다면 사랑스런 말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칭찬과 같이 듣기 좋은 말은 들을수록 우쭐한 마음이 올라온다. 반면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주는 말을 들을 땐 뛸 듯이 기쁘고 즐겁다. 설령 그것이 입에 쓴 것이라 해도 귀히 여기게 되는데 쓴 맛까지 포장해 준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상대의 답답한 지점을 시원하게 긁어주면서도 그를 따뜻하게 응원하는 것이 곧 사랑스러운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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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아첨을 하라는 의미는 아닐 텐데 그렇다면 사랑스런 말은 대체 무엇일까?

 

물론 그런 말은 하기 힘들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꿰뚫는 능력과 무슨 말이든 듣는 이가 기분 상하지 않게 전할 수 있는 센스도 갖춰야 하니 말이다. 나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말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해 왔다. 얼마 전 언니와 통화할 때도 그랬다. 조카의 편도 수술 때문에 병원에 다녀온 언니가 말했다. 담당의는 완전 절제술을 선호하는데 자신은 편도의 일부만 절제하는 피타 수술법이 나아 보인다고. 하지만 전문가도 아닌 자기가 집도의에게 그가 원하지 않는 수술법을 요청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니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고민했고 동시에 자신의 결정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해했다.

아마도 언니는 나와 대화하며 피타 수술법을 주장하는 자기 의견이 정말 타당한지 점검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미 언니가 원하는 바가 명확해 보이는데 수술을 반대하는 입장인 내가 길게 말해 봐야 혼란만 더할 듯했다. 그래서 수술법에 따른 부작용은 예측만 할 뿐 실제는 어떨지 모르니 원하는 대로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언니가 만난 권위주의적인 의사, 즉 환자(내지 보호자)와 충분히 대화하지 않고 지시나 통보하는 의사들에 대한 불필요한 감상을 보탰다. 언니는 할 말이 남은 듯했으나 사정이 생겨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제야 내 말의 어느 구석도 사랑스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참된 대화는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확실성을 기꺼이 보류하려고 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한 나의 입장을 지키느라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했다.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니라면 수술은 피하는 게 좋다는 나의 확신은 당장 수술법을 두고 고민하는 언니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듣는 귀가 열려 있었다면 개인적인 신념과 관계없이 상대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고 그래서 서로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보니 그동안 내가 느낀 공허함은 어디에도 닿지 못할 말을 흩뿌린 데서 온 듯하다. 충분히 듣고 그에 맞게 반응하면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 없이도 사랑스런 말을 할 수 있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말을 듣는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훈련이 잘 되면 그동안 느꼈던 말하고 난 뒤의 공허함이 충만함으로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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