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추어서 직업을 가져야했다. 나는 직업에서도 재미가 중요했다. 일이 재미 있으려면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 일이 밀리면 이미 재미가 없기 때문에 하기가 싫어진다. 재미는 성과와 인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나의 방향은 성과로 향하게 되였다. 일을 해서 실적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어서 일을 많이 했었는데, 그 예로 학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학원은 생각보다 잡무가 많아서 시간 안에 모든 일을 완벽히 끝내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재미가 없어지면 퇴사를 해야하니 일이 많아지는 쯤엔 다른 사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밀리는 업무가 없게 하고 주중에 일이 밀리면 차질이 생기니 주말에 미리 일을 처리 하고 거기다 시간이 남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을 처리 했다. 너무 깔끔하게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게 되었고 거기에는 일종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지침 1번은 ‘never stop’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실적은 일의 기준점인데 보통 실적이 떨어지는 것은 실패로 여겨진다. 기준점은 항상 최고의 실적을 찍은 곳이 되니 그곳은 새로운 기준점이된다. 그 말은 내가 처음 시작한 곳은 이미 뒤처진 곳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실수가 생기고 사고가 생기거나 아프기도한다. 때로는 외부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실적이 떨어지는 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실적만 봐서는 실패로 여겨 지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 방어 해야 하는 또 다른 일이 된다. 이렇게 일은 끝없이 증식 한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번아웃 되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멈춤과 휴식을 못하는게 가장 문제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문제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증상이 있었다. 그 증상 중 하나는 혼자 가만히 조용한 곳에 있는 것 자체가 어려웠었다. 차로 15분정도 출퇴근을 하는 짧은 시간에도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라디오로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야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귀가 시끄러우면 올라오는 불안감을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왜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이 어려웠던 걸까?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 오는데 바로 그것은 고갈된 몸이 보내는 무기력과 우울, 짜증과 분노, 불안과 초조, 그리고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나를 사로잡아 서로 충돌하고 증폭되어 현실을 완전히 왜곡되게 했다. 왜곡되었지만 쉬어야한다는 신호인 불안감은 시끄럽게 노래를 틀어서 마음속 쉬어야 한다는 바람의 소리를 차단 시켰다. 온갖 망상과 착각으로 변질된 마음을 마주하면 불안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끄러운 회피였다. 그리고는 2024년 갑진년에 나는 다행히(?) 급성신우신염 이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열병을 얻었다. 결국 아파서 일을 쉬게 되었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