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씨앗을 품어서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가 발달하면 느리면서도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겪어 내는 힘을 지닌다. 자신이 지향하던 바에 대해서 ‘끈기’있게 밀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서 시작이 느리기 때문에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심사숙고 후에 일단 방향을 정하고 나면 성실하게 지구력으로 승부하며 성취를 이루는 타입이다. 엉덩이 힘이 강하달까! 아득하게 긴 터널을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 눈에는 계절이 물 흐르듯이 변하는 것 같지만, 변화하기 위해선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이’의 과정은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즉 매번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마디이기 때문에 우직하고 단단한 힘이 필요하다.
MZ세대가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1년 안에 퇴사한다는 소식은 이제 우리 귀에 익숙하다. 이직 비율도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다. 1년 내 신입 사원 퇴사율이 약 30%에 달하며, 3년 내 이직률은 45.5%이다. 최근에는 AI로 인해 신입 사원 구직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힘들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는 금방 뛰쳐나온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 역시 그러했다. 간절히 원했던 첫 대기업 직장도 1년을 채우지 못했고, 총 7개의 회사를 다녔지만 한 곳에서 2년 넘게 있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토(土)가 많기 때문에 지구력이 있는 편이지만, 육친상으로는 토 비겁과 수 재성이 과다하고, 관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 극을 받거나 ‘나’의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회사를 자주 옮기곤 했다.* 육친-십신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
자신이 맡은 바를 꾸준히 밀고 가지 못하는 것은 토 기운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에 속한다. 토 기운이 없어도 못 쓰지만, 과다한 경우에도 그것대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 세대는 감각을 지속하는 시간 단위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 매일 즐겨보는 쇼츠는 최대 3분이고, 릴스는 최대 1분 30초이다. 이 마저도 몇 초 안에 재미없으면 손가락을 위로 스와이핑 해버린다. 10분짜리 영상을 보더라도 바로 2배속을 해서 본다. 드라마와 영화도 요약본으로 핵심적인 부분만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긴 컨텐츠를 다 보는 행위야 말로 MZ들에게는 비효율적인 일이다. 빠른 보상과 빠른 결과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에 과정을 견디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면 위험한 이유는 감각을 지속하는 단위가 짧아질수록 쾌락의 강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감각 기관은 갈수록 더 강렬할 것들을 찾는다. 자극적인 음식들로 스트레스를 풀며, 시각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찾아다니고, 헤드폰에서 나오는 노래는 강렬한 전자음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감각이 흠뻑 취할 수 있는 것들에 열광하는 중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콘텐츠들이 갈수록 자극적인 이유는 ‘짧고 빠른’ 보상과 결과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흙은 만물을 품지만, 품은 것들이 다른 존재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긴 시간 안에서만 변화를 견뎌내고 맞이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다. 빠른 것은 빠른 만큼 쉽게 휘발된다. AI는 최상급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재빠르게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지만, 정작 그 지식이 우리 존재와 삶을 바꿔주진 않는다. 품고, 버티고, 썩히고, 발효시켜서 마침내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마디를 넘기는 우직한 토의 에너지를 발휘해야 한다. 당장 쇼츠를 끊고, 모든 감각을 차단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직하게 마디를 넘어갈 수 있을 때, 그 한 마디를 기어이 넘었을 때, 세상과 마주할 베짱이 두둑하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