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곱씹다보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말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잘해도 어머님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부족한 며느리다. 어머님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서 굳어진 인식이다. 어머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음에도 내가 짐작하고 단정 짓는 것, 즉 사건 위에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덧대는 행위가 바로 경전에서 말하는 ‘조작’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조작하게 되었을까. 어머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신다. 가족 외의 관계는 거의 없을뿐더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시아버님, 시누이도 어머님을 어려워한다. 정은 많으시지만 성격이 까칠하신 편이라 남편은 어렸을 적에 엄마 때문에 결혼을 못할까봐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님의 이런 생활패턴과 성격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섭섭함을 토로하며 화를 내는 어머님이 어렵고 부담스러우면서도 너무 안쓰러웠다. 더 나아가 그 외로움을 내가 채워주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자 어머님의 ‘나를 무시했다, 섭섭하다’는 표현은 나에게 죄책감과 비난으로 작동했고, 그로 인해 괴로움이 더 커진 것이다.
“괴로움은 조작하는 행위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리고 일체의 조작하는 행위 그치고 관념을 없애면 괴로움이 소멸한다.”부처님께서는 처음엔 괴로움이 조작하는 행위를 인연으로 생긴다고 하시더니이번엔 의지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나를 ‘상처받은 짠한 며느리’로 조작해놓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평소에도 ‘또 언제 화내실지 모른다, 뭔가 기대하고 계시는데 내가 놓쳤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움을 구성해서 거기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괴로움을 만들어 붙들고 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여기서 조작하는 행위를 ‘그친다’는 것은 억지로 감정을 누르거나 참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그동안 반복해왔던 것처럼 사건 위에 해석을 덧붙이고, 부정적인 관념을 만들어 괴로움을 확대하는 행위를 관찰하고 멈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