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위한 사주명리] 금(金) : 버림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는 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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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23 09:49 조회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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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 : 버림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는 힘
- 뻗어감을 그치고 수렴으로 -
증식에서 비움으로 가는 ‘금’
가을이 오면 나무는 잎을 버린다. 한껏 뻗어 오르던 가지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양기의 뜨거운 흐름은 서서히 식어 안으로 향한다. 화려했던 여름이 그치고 모든 생명이 수렴의 시간을 맞이한다. ‘양의 운동’에서 ‘음의 운동’으로 리듬이 바뀌는 것이다. 이때 금은 팽창되었던 것들을 수축시키고, 위를 향해 솟던 것들을 아래로 떨어지게 만든다. 사방으로 보내던 양분을 이제 한곳으로 모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숙살지기를 통해 정리하고 비움으로써 비로소 열매가 맺히게 된다. 겨울이 되면 그 열매조차 땅에 떨어져서 다시 봄의 생명을 준비한다.
사실 나는 가을을 떠올리면 늘 ‘열매’에만 집중했다. 잎이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여름에 파랗게 울창했던 잎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면, 그저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나서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나를 ‘채우는 일’에 열중했다. 비어 있거나 부족한걸 메꾸면 ‘행복’한 삶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더 넓은 집에서 살면 삶이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자신을 업데이트하며 채워 넣어야 했다. 왜냐하면 외적 조건이 풍요로운 사람들이 TV나 유튜브에 나와서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했고, 진심으로 만족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깐 하나 둘 씩 채워나가면 그들처럼 행복에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불행이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금 에너지는 성장을 멈추고, 기존의 성취들을 버린다. 익숙한 양기를 버리고 새로운 음기의 리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만물을 태어나고 기르는 봄과 여름만 반복된다면 세상은 불타거나 말라버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MZ들은 끊임없이 확장하고,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선행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랐다. 다다익선의 패러다임 속에서는 정지하거나 추락하면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멈추면 퇴보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일하지 않고 구직 활동을 포기한 청년들을 ‘그냥 쉼’으로 분류해버리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갈 곳을 잃었다.
말-생각-행위를 일치시키는, ‘금(金) 쓰기’
금의 기운을 잘 쓰는 방법 중에 하나는 ‘현실화’를 시키는 것이다. 금은 가을의 열매처럼 보이지 않던 에너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로 응축시키는 힘이다. 그 중에서도 ‘언어’는 사유가 현실화된 결과물이다. 현실화된 언어 중에서도 ‘말하고 듣고 쓰는’ 것 중에서 ‘글쓰기’는 가장 구체적인 물질성을 지닌다. 휘발되는 말과 달리 글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책’으로도 구현되기 때문이다. 글은 보이지 않던 사유들을 보이는 형태로 응고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사유가 ‘글’로 현실화 될 때, 글쓰기는 더 많은 세계와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된다.
금 기운이 잘 녹아든 글은 논리적이며 구조가 탄탄하다. 사건의 인과를 재해석하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구조적인 유기성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왜 그 상황에서 기분이 나빴을까? 내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등 스스로에게 묻고, 여러 원인을 찾아가며, 자신의 생각에 길을 내다보면 불안이 줄어든다. 묵혀있던 감정이 풀리기도 하고, 생각보다 쓸데없는 고민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는 인과를 재해석함으로써 기존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MZ는 누구보다 글을 많이 쓴다. 글 쓰는 환경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고, 글 쓰는 플랫폼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DM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장을 입력하며,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글로써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러한 글을 ‘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MZ 스스로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보다는 ‘감정 리액션’에 가깝기 때문이다. 감정을 주고받을 뿐 사유와 성찰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인슈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암 박지원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직접 받은 편지가 아님에도 그 안에 담겨있는 사유와 성찰이 여전히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편지는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언어가 아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고뇌와 정제가 스며있었다. 그래서인지 편지들은 시공을 넘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에 비해 내가 매일 친구들과 주고받는 메시지에는 감탄사와 웃음뿐이었다. ‘ㅋㅋㅋ’와 ‘미쳤다’만 반복하는 말 속에서 언어의 빈곤함이 느껴졌다.
현재 MZ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인스타그램에는 말·생각·행위의 간극이 넘친다. 사실 ‘일상’이라기보다 일상을 벗어난 장소, 이벤트, 관계를 공유한다. 자신의 실상을 진솔하게 펼치기보다는 꾸며내거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바쁘다. 해외여행, 맛집 인증, 갬-성 넘치는 인테리어, 힙한 패션 등은 쉽게 공유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365일 그러한 삶을 사는가? 일 년에 손꼽는 이벤트가 마치 일상인 것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가. MZ들이 SNS를 대하는 반응은 극단적이다. 적극적으로 자랑하거나 완전히 끊어버리거나. 볼수록 비교되기 때문에 SNS를 떠나는 친구들도 있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의 고민, 어려움, 평소 생각을 보기 힘들다. 잘 나가는 것만 있는 세상에서 생각을 정제한 글은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쓸 생각도, 공개할 자신도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을 잘 사는 모습으로서만 자신을 소개하고 공개한다. 말·생각·행위의 지독한 어긋남!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꾸미고 위장하는 것은 거짓말과 다르지 않다. 말·생각·행위의 간극 자체가 우리의 삶을 더욱 카오스로 만든다. 금은 이것들을 일치시킨다. 사유를 정제하고, 언어를 질서화하며 이 세 가지를 일치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우리가 어떻게 긴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글을 읽지도 않는데 말이다) MZ답게 짧고 임팩트 있게 써보는 것은 어떨까. 더도, 덜도 말고 딱 두 세 문장으로! 꾸며낸 글과 일상이 아닌 진솔하고 정제된 언어를 활용해서 말이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친구가 『팔레스타인 시선집』 사진과 함께 ‘폭력’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렸다. “모든 존재가 두려움 없는 사랑 속에 살아가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소망에 대한 글이었다. 어느 게시물보다 눈이 오래 머물렀고,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으며 읽게 되었다. 나는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덕분에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호흡이 가쁘게 돌아가는 인스타그램 속에서, 친구의 글은 선물이었다.
면역력이 약한 MZ를 위한 금 용신법
MZ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남들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 중시되고, 성공 궤도를 향해 가열차게 달리는 화기가 치성한 시대에 살고 있다. 화 기운이 주관하는 심장은 그 불길이 위로 치솟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의 장기인 폐에 둘러 싸여 있다. 폐는 뜨거운 화기를 가둠으로써 바깥으로 화기가 세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금이 지닌 서늘함으로 과도한 욕망의 폭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화가 금을 극하여 녹아버릴 정도로 균형이 무너졌다. 화기가 지나치게 치솟는 중이다. 그 결과, 폐와 연결된 피부가 허약한 채로 태어나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아토피’다. 폐는 피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폐기가 약해지면 피부 또한 건조하고 거칠어진다. 내 주변에도 어릴 적부터 아토피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외부 자극에 쉽게 염증이 생겨서 늘 따갑고 가렵다. 아토피에 대한 원인으로 오염된 공기, 패스트푸드, 스트레스 등을 꼽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에 대한 면역력의 저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외부에 대해 면역력이 약하다는 것은 곧 나와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는 힘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몸이 미세한 먼지에도 과민 반응을 일으키듯, 나와 다른 세계를 받아들일 때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MZ들의 공정함에 대한 과민 반응, 타인의 시선에 대한 예민함, 작은 차별에도 쉽게 분노하는 현상은 외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내면의 면역력이 약하다는 증거다.
면역은 외부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몸에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것을 내보내는 균형의 능력이다. 금 기운이 약한 MZ들의 신체는 그래서 금을 살려내는 용신법을 통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금을 극하는 화 기운을 강하게 쓰면 상체로 열이 뜬다. 그로 인해 두통, 짜증, 분노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초반에 발산하려는 힘을 아끼며 마무리를 매듭 짓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 또한 외부 세계와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이 먼저 튼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글쓰기는 탁월한 금의 용신법이다.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구조화하며, 내면을 맑게 정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글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그 글을 통해 외부와 연결될 때 금의 기운은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금(金) 드라마 캐릭터 : <폭싹 속았수다> 관식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에 나오는 ‘관식이’는 극 중에서 가장 ‘단단한’ 인물이다. 초지일관 애순이를 향한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애순이를 쫓아다녀 결국엔 고등학생 때 결혼하고 죽기 전까지도 애순이를 생각하며 생을 마무리한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어떤 외부의 변화가 생겨도 언제나 변함없이 애순이가 자리 잡고 있다. 한결같이 애순이만 바라보는 모습은 가을의 바위처럼 묵묵하고 단단한 금의 기운을 닮았다. 오죽하면 관식이의 별명이 ‘무쇠’일까. 하지만 가끔은 무쇠처럼 너무 딱딱해서 애순이가 웃어도 고장나고, 울면 더 고장난다.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관식이가 아내 애순이와 딸 금명이에게 자주 했던 말은 “수 틀리면 빠꾸!”이다. 해결책도 무쇠 스럽다! 마지막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관식이는 자신의 삶의 매듭을 무쇠답게 맺고 떠난다. 아내가 자주 잃어버리는 머리핀을 잔뜩 사놓고, 아내의 눈높이에 맞춰 높이 올려진 물건들을 재배치해준다. 시작도 애순, 끝도 애순! 지독한 사랑꾼이다^^. 자신이 한 번 옳다고 생각한 길을 끝까지 우직하게 밀고 가는 금의 기운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 무쇠 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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