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위한 사주명리] 수(水) : 다시 철학의 시대 – 근원을 통찰하는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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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8-06 06:27 조회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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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꿰뚫는 힘
겨울이 왔다. 땅에서 싹이 올라오는 봄, 새싹은 여름이 되면 쑥쑥 뻗어나가 꽃을 피운다. 찬 바람이 불면 열매를 맺고 나머지 잎을 다 놓아버리는 가을을 거쳐 겨울,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모든 생명은 봄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 그리고갈무리하는 겨울을 통과하는 생명의 마디를 밟는다. 겨울의 때에 씨앗은 차가운 땅속에서 스스로를 갈무리한다. 세상에 태어나 살고, 죽음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행로도 이와 같다. 인간사를 사계절로 바꾼다면 겨울은 생을 성찰하고, 갈무리하는 노년의 단계라 할 수 있다. 목-화-토-금-수 오행에서 겨울은 마지막 마디인‘수(水)’의 기운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빠르고, 화려한 ‘여름’을 지향한다. 여름을 떠올려보자. 해를 잘 받기 위해 손을 쫙 벌린 나뭇잎과 활짝 피어난 꽃, 주변에 모인 갖가지 곤충들. 단연코 여름은 양적으로 보이는 영역의 끝판 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은 여름과 상반된 자리에 놓인다. 겨울은저장의 계절이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저장하고, 땅에 떨어진 열매의씨앗은 땅에 묻힌다. 겨울이 오면 긴 시간 동굴이나 땅에 들어가 잠을 자는 동물도 있다. 옛날 사람들도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으며 이 계절엔 충분한휴식을 취했다. 운동성이 약해지는 때라무겁고,침잠한다. 여름(火)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여름 산이 화려한 색채와 소란함으로 가득 찬 양(陽)의 정점이라면, 겨울 산은 적막 그 자체인 음(陰)의 극단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을 우리는 ‘응축’이라 부른다. 눈으로 보기엔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는 땅 속은 뜨겁다. 씨앗은 대지의 강한 압력을 견디며 생존에 필요한 ‘정수’만을 남긴다. 씨앗(알맹이)이 쭈글쭈글하게 생긴 건, 겨우내 땅 속에서 사방으로 강력한 압력을 받고 견뎠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겨울에 씨앗을 땅속에 묻고 동물들이 동면하며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은, 다가올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새롭게 나아갈 수 있고, 겨울을 곡진하게 보낸 뒤에야 새싹은 봄을 힘차게 맞이할 수 있다. 수는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실을 기하는 고요하지만 강력한 때다.
이런 수 기운을 물상으로 표현하면‘물’이다. 물은 만물을 기르는 생명의 근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가장 낮은 곳, 혹은 알 수 없는 가장 깊은 바다에 도달한다. 심연은 내면을 향해 깊이 침잠하고 사물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지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수 기운의 가장 큰 특징은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꿰뚫는 힘!’ ‘근원을 탐구하는 힘!’이다. 수 기운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지혜를 상징한다.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빠르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세상을 욕망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애쓰지 않아도 화(火)기운이 치성한 조건 속에서 불타오르는 채 살고 있는 셈이다. 산업사회 이래로 과하게 타올랐던 탓일까? 2030세대의 행보는 철학을 구하고, 지혜의 샘물을 찾아다니고 있다. 특히 2030, MZ들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라 <불교박람회>에 가기 위해 개장 두 시간 전부터 오픈런을 하고, ‘깨닫다’ ‘번뇌 멈춰’ 같은 불교 ‘밈’이 프린트된 불교 굿즈는 순식간에 품절된다. MZ는 지금 ‘불며드는’ 중이고, 불교는 나날이 힙(hip)해진다. 불교뿐만 아니다. 베스트셀러 책으로 자기계발서가 아닌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서가 1위로 등장했다. 주 고객층은 2030세대였다. 불교를 필두로 시대를 초월하는 ‘본질적 가치’ ‘나만의 철학’이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는 중이다. 특히 20대 젠지(Z세대)들에게! 2025년 Z세대의 새로운 트랜드 키워드 중 하나는 ‘다시 철학’이다. 대학에서도 ‘철학과’를 찾을 수 없는 시대인데, 철학이 신세대와 만났다니! 놀랍다.
생각해보면 목-화-토-금-수의 단계에서 수(水)기운이 꼭 필요한 것처럼 근원과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하는 힘은 삶에 꼭 필요한 과정이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교에 대한 MZ의 대규모 열풍은 놀랍고, 또 한편으론 생뚱맞다. 왜? 도대체 MZ들이 왜?

풍요로운 세상, 공허한 나 : ‘마음’의 혁명
며칠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20대 중반인 친구는 최근 불면증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며,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했다. 들어보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남들보다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후회와 자책 등 여러 가지 걱정으로 생각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친구가 주로 하는 걱정은 ‘선택’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내가 잘못 선택하면 어떡하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세상에서 수많은 선택지에 당황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안에 변하지 않는 기준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 Z세대는 MBTI 같은 셀프 분석 도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삶에서 중시해야 할 명확한 기준, 분명한 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만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세우는 데까지 관심을 갖는다.(『Z세대 트렌드2025』, 대학내일20대연구소 지음, 위즈덤하우스, 27쪽)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불안하다. 그러나 불안의 주된 원인과 불안을 다루는 태도는 다르다. 조・부모 세대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 ‘생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했고, 신체적 ‘안전’을 지키고, 가족을 ‘책임’지는 게 중요했다. 지금 3040세대는 청춘의 시기에 높은 사회 성장으로 경쟁에서 밀리는 것, 남들보다 성공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세대까지는 커트라인 높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아니면 전문직, 안정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삶이라는 정해진 코스, 성공 ‘기준’이 있었다. 정해진 궤도에 올라타 ‘열심히’ 살면, 나름 살만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다르다. 학벌은 사라지고, 평생직장 개념도 없어졌다. N잡 시대, 하나의 직업만으로 사는 건 불안하다. 취업을 한다 해도 끊임없이 커리어를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 가야 할지,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매 순간 고민하고, 결정해나가야 한다. 정답은 없고, 그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불안의 강도는 오히려 더 쌔졌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폰과 함께한 Z세대는 눈앞에 닥치는 선택지가 수만 가지인 세상에만 살았으니, 불안의 정도는 더 강렬하지 않을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때마다 선택지가 놓인다.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사찰을 다녔지만, 그 스스로 불자가 된 건 코로나19를 겪으면서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꼈다.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럴수록 소진된다. 세상은 풍요로운데 나 홀로 허한 느낌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할 때였다. 삶의 해방구를 찾듯 명상을 시작했는데 불교가 달리 보였다.”(<힙한 불교 탄생기>, 김영화, 시사IN, 2024.05.16.)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스마트폰 너머 인공지능이 등장할 정도로 기술은 발전하고, 그토록 염원했던 계급과 학벌사회는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문명이 주는 혜택을 가장 잘 받고 있는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도 깊은 불안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앞 장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도 불안하고 공허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할 때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돈도 벌고, 전보다 능력은 더 좋아지고 있는데도 잘 살고 있다는 마음이 안 생겼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불교공동체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보면 나도 힙불교를 사랑하는 MZ다!) 불교와 아무런 인연이 없던 내가 그 공간에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했다. 우연히 한 스님과 차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시간 동안 스님과 나눴던 대화 주제는 ‘정어’였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도덕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삶에서 실천하려 애쓰는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만났다. 그런 이야기를 진심으로 전해주는 어른도 처음 만났다.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그 말에 혹해서 다음 날부터 절에 눌러 앉았다(^^) 수행에 큰 대의명분이 있거나, 불교에 남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살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MZ들은 잠깐의 위로나 힐링이 필요해서 불교에 열광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유행이라고 넘기기엔, 강도가 세고 길~다. 내 주변만 봐도 같이 공부하는 친구 여덟 명 중 여섯 명이 이미 불교 공부를 하고 있고,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도 공부 텍스트로 ‘불교’를 선택했다. 공부하는 공간이라서 그런다고 하기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직장인 친구 상당수가 정토불교대학을 다녔다. 거기다 멀쩡하게 직장 다니고, 학교 다니다 20대 중반에 출가한 친구도 세 명이나 된다! 친구들에게 불교공부를 왜 하냐고 물어보면 적어도 내가 지금보다 더 편안한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우리 모두에겐 막연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구체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와 지혜의 말씀을 들으면, 적어도 그 말을 따라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시비와 이익의 언어에서 떠난 부처님의 말씀은 이전과는 다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그 말에 젊은 세대는 감동한다. 불교가 힙해진 건, 우연이 아니다. 불안정한 외부 환경과 틀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세대가 화려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화(火)기운’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는 ‘금(金)기운’ 대신 내면의 고요함과 본질을 찾으려는 ‘수(水)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눈을 돌린 현상이 이해된다. 허무와 불안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이 불교를 찾고, 부처님을 불러냈다.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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