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다윈이 열어젖힌 ‘세계’에서 가치를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허무주의자’라 부를 수 있다. 사실 니체 전기를 읽기 전 허무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무기력한 상태만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언가를 탐닉하고, 쫓아가며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도 ‘허무주의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본능적 욕망을 따르기가 쉬워진다. 이를테면 욜로족처럼 오늘의 나를 만족시키는 음식, 오늘의 나를 만족시켜줄 쾌락을 찾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개인의 안락함과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이러한 모습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정리하자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내 삶에 가치를 ‘알 수 없는 바깥, 신’에게 위치시키고 맹목적으로 따르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이거나,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아무런 양식없이 살아가는 ‘허무주의자’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니체의 철학은 이 둘 사이에 포획되지 않고 둘 사이를 가로지르려는 대담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니체가 신의 죽음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자유로운 해방으로 받아들였던 여느 과학자나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그건 아마 니체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내 생각에 니체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은 상당히 중요했으며, 그것의 죽음은 앞서 말했듯 정말 세계의 ‘붕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우선 그는 1849년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의 사망, 1850년 동생 요제프의 사망, 1855년과 1856년에 각각 고모 아우구스타와 할머니 에르트무테의 사망을 겪으며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상실을 맛본다. 비록 어린 시절이긴 하나 ‘가족의 상실’, 특히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니체에게 굉장히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죽음’은 흔히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신적인 사건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따라서 이 설명 불가능한 사건을 니체가 ‘기독교적’으로 해석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일 테다.(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린 시절 독실한 신자기도 했다.) 그러니까 니체에게 기독교는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가치였고,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믿음 체계였다. 기독교를 믿었기에 한동안은 평화를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나 역시 어린 시절 꽤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항상 ‘인간의 죽음’과 같은 자연적 일이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두려웠지만 천국 같은 것을 독실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그 믿음에 입각해 행동하면 행동할수록(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선행을 베풀면 천국에 갈 수 있다든가) 마음이 평화로웠던 기억도 난다. 다시 돌아오자면 니체 개인에게는 믿음 체계의 붕괴가 곧 ‘신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다윈이나 다른 철학자들에게 ‘신의 죽음’이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일이었다면, 니체에게는 정말 존재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던 것! 니체가 이 문제에 그토록 진지하게 임할 수 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외면하지 않았던 것, 자기 자신을 무질서한 상태에 방치할 수 없었던 것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사실 이러한 허무주의의 극복에 대한 해답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니체를 공부하며 알아가 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내가 ‘신을 믿거나’, ‘허무하거나’ 한 삶을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금의 힌트를 얻어보자면 니체는 그 해답을 그리스인들에게서, 또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에서 찾았다. 그러면 가치가 아무리 붕괴 되어도 스스로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삶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삶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