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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 사이에 우애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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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극락거사 작성일26-05-23 22:24 조회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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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우애 있고 즐겁게 사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이것은 마치 본성과 같아서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억압보다 자유를 원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고, 불평등보다 평등을 원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고,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는 것이 인간 본성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노동이 싫다. 나는 인간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상황이 주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의식주를 위한 재화와 용역의 생산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관료제적 지배와 억압, 통제와 탄압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심각하게는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덜 심각하게는 일상에서의 인격적 모멸감을 겪게 되는 감정의 상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상황에서도 서로 증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가족 관계에서 유발되는 증오와 갈등이 있지만, 인간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이 일터라고 생각해 보면 생산 현장이 곧 인간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물론, 나와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동료들과 협업하며 즐겁게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면서 소득을 늘리고 타인에게 봉사하며 인생의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마을에 다리를 놓는 건설 일을 생계를 위한 밥벌이로 생각하지 마을 주민에 대한 봉사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인간이 생산을 한다는 것은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 관계는 자본이 만드는 관계이기 때문에 노동 그 자체를 하기 싫어해도 표현상으로는 자본에 의한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라도 인간이 생존을 위해 노동을 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고통과 인간관계의 고뇌가 자본주의적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더러 ‘인간극장’ 같은 데서 마을 아낙들이 밭일을 하며 서로 노래를 부르고 새참도 같이 먹으면서 즐겁게 노동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낭만적인 모습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전근대의 농촌 공동체에서는 마을에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으면 서로 모여서 품앗이하며 고기도 굽고 전도 부치며 잔치 음식을 장만하면서 서로 우애를 다지지만, 전문적인 분업이 일상화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혼식 업체 직원들이 매일 같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면 농촌 공동체가 더 행복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서 이런 서비스를 관료제적 지시나 통제 없이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겠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나로서는 전근대적 공동체의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복원되면 좋겠다고 그리워하지만, 어느 날 문득 시키는 일을 하다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의 생산이 과연 지시와 통제, 관리가 없이 효율적으로 생산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산 과정은 지배와 통제 속에서 형식적이고 수단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고 그런 관계가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적합하며, 겉으로 보이는 우애 있는 인간관계는 원만한 과업 달성을 위한 윤활유로서의 도구적 의미일 뿐, 오히려 정서적 친밀감이나 진솔한 인간관계는 생산 성과를 떨어뜨려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아니고서는 효율적인 생산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 사회가 누리는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실현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생에서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는 전적으로 우애 있는 관계일 수가 없고, 하루의 절반 이상, 인생의 절반 인생을 보내야 하는 일터에서의 인간관계가 그런 성격을 갖는다면 인간과 인간이 우애 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인간관계가 한국 자본주의만의 독특한 특성이라면 내 전제는 모두 틀리겠지만, 정도는 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평소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스스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론에 포섭되며 변절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를 떠나 마치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 세상과 인간관계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세에 능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데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야 그런 걸 어떻게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나이를 다 먹은 인생 후반에 와서야 깨닫느냐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위해 경제적 자립이나 근로 활동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 참여하여 생산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생이 얼마나 특별하고 인간관계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느냐, 그냥 다들 먹고 살기 위해 직장생활하는 거지’라고 말할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힘들다는 것이다. 인생이 무의미하거나 그걸 넘어 관료제적 지시나 통제 관계에서 유발되는 관계의 피로도가 삶의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먹고 살 궁리를 하지 말고 소신 있게 살아라고 하는 것도 책임지기 힘든 말이거나 현실성이 없는 말 같고, 먹고 살 궁리를 빨리 끝내고 보다 진솔한 인간관계를 통해 즐거운 인생을 살아라고 하는 것도 돈 잘 버는 유능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인 것 같다. 아니면 나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못한 것이지만, 진짜 자기 인생의 행복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게 인생이다.

근데 진솔하고 우애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행복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 용기를 내긴 해야 한다. 그러한 인간관계는 국가나 지역 사회, 또는 어느 개인이 자신을 대신하여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고, 스스로 그런 사람들이나 환경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개인에게 무슨 책임이나 결과를 돌리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 편이지만, 인간과 우애를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스스로 용기를 갖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 방법이 딱히 없다.

물론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우애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존재인가? 라는 의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주는 그런 벗들을 찾아 떠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 공부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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