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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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극락거사 작성일26-08-07 14:01 조회18회 댓글0건본문
전근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살았을까? 삶의 이유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물론 요즘엔 ‘사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하냐?’고 되묻기도 한다(역설적인 반문일 것이다. 삶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이유를 답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되묻지는 않을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가능성도 없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큰 부를 얻는 게 쉽지도 않았을 테고, 종교적 구원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종교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컸겠지만 삶의 가장 큰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생산 능력이 오늘날처럼 높은 수준이 아닌 사회에서 대부분 가족 단위를 기준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주된 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타의 동물들처럼 생존 자체가 목적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서 뭔가 인간 존재의 고매한 가치들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난 인간이 동물과 아주 근접한 경우를 보게 되거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생계 자체가 목적인 게 틀린 얘기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다가 어느 순간 늙어 흙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다소 무상할 수도 있지만 인생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너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다가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것도 나름 가치가 있는데 말이다(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사회는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강요했다고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는 공부를 좀 더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근대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경제적 유인과 동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생계나 물질적 부유함,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살 것이고 끝임없이 부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삶의 주요한 목적이자 당연한 이유로 여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과 이유를 제시하고 문명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나름 강점이 있는 것 같지만, 인류는 어느 시대나 어떤 식으로든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 꼭 특별하게 여길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정신적 공허와 방황, 질병들을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거나 부를 추구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할 생각이 없음에도 부에 대한 탐욕을 지극히 정상적이거나 미덕으로 여기는 이 체제가 건강한 체제인지는 의문이다(소수이겠지만 이 체제의 전적인 수혜자들 중에는 오늘날의 풍요와 번영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탐욕의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30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1인당 4만 달러를 눈앞에 둔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상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코스피 1만을 이야기해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1인당 국민 소득 4만 달러를 이야기해도 남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정신적인 삶의 만족도는 별개로 하더라도 30년 전에도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보는 고급 아파트나 외제 자동차, 풍요로운 먹거리와 여유로운 중산층의 여가 생활이 그렇게 흔한 일상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 제목을 처음 보고 살인을 추억한다는 의미의 황당함과 뇌리에 담겨 있던 추억이라는 낱말의 의미가 변질되는 혼란을 겪었는데, 설사 ‘사회주의의 추억’이라고 말해도 사회주의자들이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주의라는 낱말 때문에 추억이라는 낱말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 좌절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성품이나 덕성까지 내포하는 가치라면 해당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물질적 수준이라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30년 전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던 그런 사회주의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가족 중에 중병이 걸린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온 집안이 얼마든지 풍비박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지만, 그래도 사회주의자들이 30년 전에 고민했던 물질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 절대적 빈곤층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여태 생계나 노후를 위해 원치 않는 임금 노예의 삶을 살다가 이제 자유인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맞았다. 어떤 사람은 다소 이른 시기에 충분치 않은 노후 자금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그냥 이유 없이 사는 삶보다 더 의미 없는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종종 드는 생각이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세상과의 연결 고리들을 끊는다 해도 앞으로의 삶을 대단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 고민이 된다. 그냥 이유 없이 살아도 되고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떤 이정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유인이 된다면 나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무언가 고상하고 거창한 것들을 고민하거나 그런 것에 너무 큰 관심과 힘을 쏟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럴 역량도 안 되지만 말이다. 오히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만나는 가까운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현실적인 과제들부터 해결하며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정신적이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일상을 실현할 구체적인 것들을 일상의 과제로 여기며 삶을 구성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간소함, 단순함, 평범함 속에도 삶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라는 변명이 늘 암묵적으로 의식 속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삶을 위한 다른 삶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동안의 관성과 타성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고 이런 것들이 나중에 이야깃거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정리하고 마친다.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해야 할 것들
취침과 기상 시간, 청소와 정리정돈, 규칙적인 운동, 나쁜 먹거리 피하기, 아름다운 자연환경 가까이하기
자유인의 삶
공부(독서와 글쓰기), 생각하며 살기(사색과 명상), 건강한 인간관계, 사회적 관심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서 뭔가 인간 존재의 고매한 가치들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난 인간이 동물과 아주 근접한 경우를 보게 되거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생계 자체가 목적인 게 틀린 얘기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다가 어느 순간 늙어 흙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다소 무상할 수도 있지만 인생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너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다가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것도 나름 가치가 있는데 말이다(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사회는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강요했다고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는 공부를 좀 더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근대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경제적 유인과 동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생계나 물질적 부유함,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살 것이고 끝임없이 부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삶의 주요한 목적이자 당연한 이유로 여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과 이유를 제시하고 문명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나름 강점이 있는 것 같지만, 인류는 어느 시대나 어떤 식으로든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 꼭 특별하게 여길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정신적 공허와 방황, 질병들을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거나 부를 추구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할 생각이 없음에도 부에 대한 탐욕을 지극히 정상적이거나 미덕으로 여기는 이 체제가 건강한 체제인지는 의문이다(소수이겠지만 이 체제의 전적인 수혜자들 중에는 오늘날의 풍요와 번영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탐욕의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30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1인당 4만 달러를 눈앞에 둔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상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코스피 1만을 이야기해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1인당 국민 소득 4만 달러를 이야기해도 남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정신적인 삶의 만족도는 별개로 하더라도 30년 전에도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보는 고급 아파트나 외제 자동차, 풍요로운 먹거리와 여유로운 중산층의 여가 생활이 그렇게 흔한 일상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 제목을 처음 보고 살인을 추억한다는 의미의 황당함과 뇌리에 담겨 있던 추억이라는 낱말의 의미가 변질되는 혼란을 겪었는데, 설사 ‘사회주의의 추억’이라고 말해도 사회주의자들이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주의라는 낱말 때문에 추억이라는 낱말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 좌절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성품이나 덕성까지 내포하는 가치라면 해당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물질적 수준이라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30년 전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던 그런 사회주의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가족 중에 중병이 걸린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온 집안이 얼마든지 풍비박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지만, 그래도 사회주의자들이 30년 전에 고민했던 물질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 절대적 빈곤층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여태 생계나 노후를 위해 원치 않는 임금 노예의 삶을 살다가 이제 자유인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맞았다. 어떤 사람은 다소 이른 시기에 충분치 않은 노후 자금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그냥 이유 없이 사는 삶보다 더 의미 없는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종종 드는 생각이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세상과의 연결 고리들을 끊는다 해도 앞으로의 삶을 대단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 고민이 된다. 그냥 이유 없이 살아도 되고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떤 이정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유인이 된다면 나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무언가 고상하고 거창한 것들을 고민하거나 그런 것에 너무 큰 관심과 힘을 쏟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럴 역량도 안 되지만 말이다. 오히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만나는 가까운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현실적인 과제들부터 해결하며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정신적이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일상을 실현할 구체적인 것들을 일상의 과제로 여기며 삶을 구성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간소함, 단순함, 평범함 속에도 삶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라는 변명이 늘 암묵적으로 의식 속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삶을 위한 다른 삶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동안의 관성과 타성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고 이런 것들이 나중에 이야깃거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정리하고 마친다.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해야 할 것들
취침과 기상 시간, 청소와 정리정돈, 규칙적인 운동, 나쁜 먹거리 피하기, 아름다운 자연환경 가까이하기
자유인의 삶
공부(독서와 글쓰기), 생각하며 살기(사색과 명상), 건강한 인간관계, 사회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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