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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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극락거사 작성일26-08-22 11:48 조회22회 댓글0건본문
한겨레 신문의 조현 기자가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공동체는 현대인의 외롭고 소외된 삶의 방식, 수단화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대안적 생활 방식일 게다. 일을 그만두면 ‘공동체를 체험해 보자.’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진짜 그런 삶을 살고 싶다기보다 그곳에서는 정말 직장에서 만나는 인간들과 달리 “수단적인 인간관계가 없을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인간관계의 희망을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내 개인적 한계도 있지만 직장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 자체가 기본적으로 계약적이고 수단적인 인간관계로 구성되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면 어느 정도 신뢰도 형성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친해진 것 같으면 어느 순간 사람을 자기 편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 같다. 특히 기간제와 같은 계약직은 정규직과 친해지면 정규직은 우월한 지위에 더해 이런 친분을 자기 편의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나쁜 인간이면 경계심을 확실히 가질 텐데, 어중간하게 사람을 혼돈하게 만들 때는 뒤늦게 후회하며 정말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인간 불신과 경계심을 각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이 교사를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내가 경험한 다른 악한 인간들에 비하면 악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랜 ‘짬밥’으로 학교 전체의 교육 과정의 흐름이나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 같은 것에 대해서는 좀 알아도 교과 지식이나 시험 출제에서는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몇십 년을 학교에 있었으면 어느 정도 경험이나 능력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디 뒷문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가 더 많다. 그런 교사들 아직도 좀 있을 것이다.
시험 출제나 수업 준비에서 이 사람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적지 않은데, 굳이 그렇게 세세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경력이 많으면 오히려 존경을 받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데, 교사나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존경심 이런 것은 애초에 스스로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보통 뭘 자꾸 부탁하는 경우가 많고, 수저만 얹으려 하고, 학생들의 교육적 성과보다 자기 편의 중심으로 무성의하게 대충대충 하는 임기응변식이다. 20년 전부터 생각했는데, 임용에 떨어진 젊은 예비 교사들이 받아야 할 급여의 2배를 받으면서 능력이나 자질은 그 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계만 그럴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세상을 부조리하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 시장은 일부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불공정하거나 문제 있는 방식으로 진입하거나 정해진 절차대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진입해도 취업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뽑는다고 기득권부터 누리려는 생각에 시간이 갈수록 안주하며 무능해지는 방식으로 비효율적인 노동 문화가 존재한다. 물론 그렇게 정규직이나 주류에 진입한 젊은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기성세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기득권을 형성하며 기성세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저번 학기와 이번 학기 내가 지원하고 기여한 게 많음에도 조퇴로 인한 수업 보강을 자꾸 내게 요청한다. 한 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앞으로 반복될 것 같다.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 동료 정교사 집단에게는 함부로 요청하기 힘든 것들을 주로 기간제 교사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부탁한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이런 식의 자잘한 감정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걸 거부하지 못하고 불편한 인간관계를 감수하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일까? 내가 받는 돈의 3~4할은 이런 감정의 상처를 당하는 대가인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
며칠 전 정교사1, 정교사2와 함께 아침에 편의점 근처에 있었다. 정교사2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정교사1에게 ‘캔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었고 정교사1은 방금 전에 마셔서 안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사람이 갖는 당연한 정서라면 내게도 물어보고 마실 생각도 없었지만 마신다고 하면 2캔을 사서 나눠 마시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날 아침 맑은 하늘을 보며 기분이 좋았는데, 그 상황을 겪고서 감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물론 익숙한 경험이라 감정의 훼손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불쾌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인간관계의 감수성이 부족한 인간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사는 걸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힐 인간들이고 그들도 나를 잊겠지만, 빨리 눈발이 흩날리는 계절이 왔으면 좋겠다.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공동체는 그렇게 흔하지도 않고 성공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 집단이 가질 수밖에 없는 대립과 갈등, 분열과 상처가 공동체라고 해서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말 공동체를 찾아가 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인과는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을 들어보고 싶고, 실제 대안적인 인간 사회가 가능할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공동체에서도 이런 식의 감정의 상처들을 겪게 될까? 나중에 정말 확인해 보고 싶다. 만약 별 차이가 없다면 안타깝겠지만 인간은 그냥 야생 동물의 일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개인적 한계도 있지만 직장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 자체가 기본적으로 계약적이고 수단적인 인간관계로 구성되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면 어느 정도 신뢰도 형성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친해진 것 같으면 어느 순간 사람을 자기 편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 같다. 특히 기간제와 같은 계약직은 정규직과 친해지면 정규직은 우월한 지위에 더해 이런 친분을 자기 편의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나쁜 인간이면 경계심을 확실히 가질 텐데, 어중간하게 사람을 혼돈하게 만들 때는 뒤늦게 후회하며 정말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인간 불신과 경계심을 각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이 교사를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내가 경험한 다른 악한 인간들에 비하면 악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랜 ‘짬밥’으로 학교 전체의 교육 과정의 흐름이나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 같은 것에 대해서는 좀 알아도 교과 지식이나 시험 출제에서는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몇십 년을 학교에 있었으면 어느 정도 경험이나 능력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디 뒷문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가 더 많다. 그런 교사들 아직도 좀 있을 것이다.
시험 출제나 수업 준비에서 이 사람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적지 않은데, 굳이 그렇게 세세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경력이 많으면 오히려 존경을 받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데, 교사나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존경심 이런 것은 애초에 스스로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보통 뭘 자꾸 부탁하는 경우가 많고, 수저만 얹으려 하고, 학생들의 교육적 성과보다 자기 편의 중심으로 무성의하게 대충대충 하는 임기응변식이다. 20년 전부터 생각했는데, 임용에 떨어진 젊은 예비 교사들이 받아야 할 급여의 2배를 받으면서 능력이나 자질은 그 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계만 그럴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세상을 부조리하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 시장은 일부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불공정하거나 문제 있는 방식으로 진입하거나 정해진 절차대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진입해도 취업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뽑는다고 기득권부터 누리려는 생각에 시간이 갈수록 안주하며 무능해지는 방식으로 비효율적인 노동 문화가 존재한다. 물론 그렇게 정규직이나 주류에 진입한 젊은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기성세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기득권을 형성하며 기성세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저번 학기와 이번 학기 내가 지원하고 기여한 게 많음에도 조퇴로 인한 수업 보강을 자꾸 내게 요청한다. 한 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앞으로 반복될 것 같다.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 동료 정교사 집단에게는 함부로 요청하기 힘든 것들을 주로 기간제 교사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부탁한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이런 식의 자잘한 감정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걸 거부하지 못하고 불편한 인간관계를 감수하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일까? 내가 받는 돈의 3~4할은 이런 감정의 상처를 당하는 대가인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
며칠 전 정교사1, 정교사2와 함께 아침에 편의점 근처에 있었다. 정교사2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정교사1에게 ‘캔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었고 정교사1은 방금 전에 마셔서 안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사람이 갖는 당연한 정서라면 내게도 물어보고 마실 생각도 없었지만 마신다고 하면 2캔을 사서 나눠 마시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날 아침 맑은 하늘을 보며 기분이 좋았는데, 그 상황을 겪고서 감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물론 익숙한 경험이라 감정의 훼손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불쾌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인간관계의 감수성이 부족한 인간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사는 걸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힐 인간들이고 그들도 나를 잊겠지만, 빨리 눈발이 흩날리는 계절이 왔으면 좋겠다.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공동체는 그렇게 흔하지도 않고 성공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 집단이 가질 수밖에 없는 대립과 갈등, 분열과 상처가 공동체라고 해서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말 공동체를 찾아가 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인과는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을 들어보고 싶고, 실제 대안적인 인간 사회가 가능할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공동체에서도 이런 식의 감정의 상처들을 겪게 될까? 나중에 정말 확인해 보고 싶다. 만약 별 차이가 없다면 안타깝겠지만 인간은 그냥 야생 동물의 일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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