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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용 설명서] 위대한 남자-되기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9-03 20:20
조회 : 218  
안상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위대한 남자는 자신과 세상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 자신을 위대하다고 외치는 남자들은 세상을 병들고 탁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트럼프, 국내에서는 전광훈과 같은 부류들이다. 트럼프는 백악관 주변에서 야만적인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상대 후보 바이든을 미국의 파괴자로 규정하면서까지 자신만이 위대한 미국의 지도자(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 2020.8.27-현지시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세계는 자신들이 중심이 된 질서 속에서 움직여야 하고, 코로나가 창궐하든 말든 ‘세계 제패’의 꿈을 접을 수는 없다고 외친다. 트럼프의 후보 수락 연설에 참석한 2,000명 이상이 대부분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들의 오만함은 끝이 없다. 전광훈은 어떤가? 그는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과 가장 친하고, 하나님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한다. 코로나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시국에 버젓이 자신의 교회에서 대면 예배를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전국에서 모인 신도들을 교회 바닥에서 일 주일간 합숙까지 시켰단다. 이 후 이 교회에서는 1,000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한 8.15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서 마이크를 주도적으로 잡았고, 자신도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이 사태는 전국을 다시 코로나의 공포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대체 ‘위대하다!’는 말은 어떨 때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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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는 전국을 다시 코로나의 공포로 몰아넣고 말았다.

일단 잘 쓰지 않는 말이다. 내게 “위대한 남자”란 어린 시절 영웅들의 이미지와 함께 기억되어 있다. 이 때 영웅이란 특정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루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해내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니 위대한 남자는 나 혹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살아갈수록 위대함과 나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또 우리의 삶을 가꾸는 기술을 연마하는 공부에서 ‘위대한 비전을 가진 삶과 공부’는 중요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고, 왜소하게 하는 위대함이 아닌 우리를 건강하고 활기차고 명랑하게 할 위대함을 찾아야 한다. 내가 공부하는 감이당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금요 대중지성에서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이런 선언을 하셨다. “우리 공부의 목표는 ‘위대한 비전과 접속하는 것’, ‘천지자연의 이치와 교감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그렇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외치는 위대함과는 다른 위대함을 찾아야 한다. 니체가 말한 ‘위대한 남자’에서 그 길을 찾아보자.

위대한 남자!그가 위대한 남자라는 점에서그가 남자라고 추론할 수는 없다그는 아마도 어린아이에 불과할 수도 있고모든 연령을 오가는 카멜레온일 수도 있으며마법에 걸린 여자일지도 모른다.

(니체,즐거운 학문, 책 세상, 234)

우선 니체에게 “위대한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일단 오만함에 빠져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하는 트럼프나 전광훈 같은 부류는 아니고, 역사적, 혹은 사회적 영웅으로 기억된 남자들과도 다르다. ‘위대한 남자-되기’의 첫 번째 관문은 각자가 가진 남자 혹은 위대함, 나아가 위대한 남자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마도 ‘소통 부재’와 ‘민감성 결여’가 특징일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오만하고 무모한 남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위대함을 외치는 이 두 남자들의 ‘소통 부재’와 ‘민감성 결여’는 무모함으로 이어지고, 이들의 무모함은 세상을 위험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로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남자’는 ‘어린아이’이다. ‘어린 아이’는 ‘놀이하는 존재’이다. 어린 아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관계 맺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며,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물로 새롭게 탄생한다. 니체에게 어린 아이는 창조와 생성의 존재이다. 세 번째로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남자’는 ‘모든 연령을 오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변신을 상징하는 존재이며 니체는 여기서 연령을 자유로이 오가는 존재로 가져온다. 그 결과 소년과 청년은 장년과 노인과, 장년과 노인은 소년과 청년과 서로 섞이고 소통하는 능력이 위대함의 조건이다. 네 번째로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남자’는 ‘마법에 걸린 여자’이다. ‘여자’는 니체 철학의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 바라보고, 그래서 이성이나 논리로만 세상과 인간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아닌, ‘마법에 걸린 여자’처럼 감성과 정情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존재로의 변신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최근 나는 이런 저런 계기로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함과 동시에 ‘트럼프’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부류들이 그렇게 외치던 위대함의 허상을 더 분명히 보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고, 동시에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트럼프와 전광훈은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자신이 드러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곧 자기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대함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통해 나의 행위를 조금씩 개선해가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세상에 대한 이런 저런 예리한 심판을 하는 것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름 나를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위대한 목표를 가진 공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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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말한다. 위대한 목표를 지닌 사람은 그의 행위나 심판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의보다도 더 높은 곳에 서 있다.(위와 같은 책, 250)”고. 이제 나는 트럼프와 전광훈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쉽게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남자-되기는 내가 예전에 나름 애썼던 자신의 개인적 행위의 개선, 세상에 대한 심판자 역할, 나아가 지금 세상에 대한 정의로움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틀 안에서 나 자신의 행위를 아무리 개선한들, 세상에 대해 아무리 예리한 분석과 판단을 한들, 아무리 정의를 갈구한들 그것으로 위대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니체의 ‘위대한 남자!’를 다시 생각해본다. 니체는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로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위와 같은 책, 251)이라 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이를 위해 내딛어야 할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세상에서 위대함을 외친 남자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하고 반생명적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삶과 공부에 대한 비전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세상과 접속하고 나의 일상을 돌아보며 매일매일 겪어나가는 사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결국에는 “공부를 통해 ‘위대한 비전과 접속하는 것’, ‘천지자연의 이치와 교감하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위대한 남자-되기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니체를 읽고 난 후 나는 최근 나라는 존재를 다시 볼 때가 많다. 한때 남자였던 나는 더 이상 남자를 욕망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 욕망하는 것은 ‘어린아이’이고,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이다. 물론 ‘마법에 걸린 여자’도 예외일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진정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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